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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gif 지난 4월 15일(금) 오후 5시, 빌립 남선교회는 김삼환 목사를 모시고 새예루살렘관 2층 두란노실에서 ‘회갑기념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날을 위해 빌립 남선교회는 준비위원 모임과 새벽예배 후 준비기도회 등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행사를 준비했다. 이날 행사에는 예상을 넘는 많은 빌립 남선교회 회원부부가 참석하였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순서와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날 예배에서 김삼환 목사는 이사야 40장 28-31절을 중심으로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고 항상 기도하며, 성령 충만한 긍정적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통해 강건하고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전했다.

예배 후 새예루살렘관 1층 식당에서 진행된 2부 순서는 이요한 목사님의 기도로 시작되었으며, 케이크 커팅과 함께 정성껏 마련한 푸짐한 음식을 서로 나누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특히 빌립 남선교회는 4월 17일(주일)저녁 찬양예배시간 특순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다시 한 번 모든 성도들로부터 축하를 받는 기쁨을 누렸다. 감사예배와 특순을 드린 모든 회원들은 이처럼 차고 넘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드렸으며, 반주와 찬양 등 여러 모양으로 수고하고 도와주신 분들과 기도와 조언으로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1991년도에 창립된 빌립 남선교회는 20여 년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선교하고 사랑을 나누며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1951년도에 출생한 빌립 남선교회 회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우리 일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명성교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녀들과 함께 믿음생활 하는 것에 감사하며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부족한 것은 많지만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충성하며 야긴과 보아스 같은 귀한 기둥들이 되고자 힘쓰고 있다. 앞으로도 빌립 남선교회는 교회를 위해 더욱 충성하고 봉사하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늘 기도하며 깨어있을 것이다.

3_02.jpg bar.gif  제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 나이가 40세 즈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주님,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주님 앞에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주님께서 저를 좀 더 일찍이 손보셔서 주님 앞에 무릎 꿇리셨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그저 졸기만 하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친구가 신발 조심하라고 하여 겁을 먹었던 일만 생각납니다. 그렇게 주님을 만난 것을 기억합니다.
 또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이웃 친구를 따라 교회에 왔다 갔다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유학을 떠나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저희 부부는 자연스럽게 ‘바쁘던 차에 오히려 잘되었다’ 생각하며 교회를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제 인생의 최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좋은 직장을 입맛대로 옮겨 다니기도 하고, 초고속 승진도 해보고, 한편으로는 종잣돈을 열심히 모아서 평소에 꿈꾸던 유망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부지런히 뛰어 공장도 완성하고, K·S마크도 획득하고, 유명 공기업에 납품업자 등록도 하는 등 제 인생은 신바람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편으로 교만이라는 깊은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또 욕심을 제어하는 제동장치가 제 의식구조 속에 아예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 재미있게 노는 것이 멋진 인생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모 경제신문에서는 그런 저에 관해 ‘떠오르는 중소기업’이라는 타이틀로 크게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그 당시 제 목은 곧을 대로 곧아 있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참담한 실패가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숙명처럼 그 날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천성이 어리석은지 제 안에 한 푼도 남겨두지 못한 비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남들이 잘나가던 사업이 왜 한순간에 망했냐고 물으면 저는 서둘러 걸프전쟁 때문이라고 둘러댔습니다. 그러나 실은 진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을 주님은 아십니다.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제가 예수 믿는 직원 두 사람을 조롱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 교만했던 혀가 주님의 신성까지 침범한 엄청난 일도 있었습니다. “주님, 그때 심히 노하셨지요? 저를 손봐야겠다고 작정하셨지요? 그래서 숨 쉬는 것 빼놓고는 제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주님은 자비하셔서 그 정도로 해 두신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저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순간까지 4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회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저는 주님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저에게 영광의 하늘나라 시민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님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주님 앞에 나아온 이후 오늘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 주님께서는 저에게 한없는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많이 기도하지 못 하고, 성경도 줄줄 외지 못 하고, 특별한 은사도 없고, 방언도 할 줄 모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저 제가 주님을 조금 사랑한다는 그것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심히 망가졌던 제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하나 치유되고 변화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모든 것이 잘나가던 시절 이상으로 회복되어 있는 현실을 볼 때마다 주님의 큰 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아시다시피 제가 억울하게 고소당하여 번민했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재판을 하루 앞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기도실에서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궁리하고 있던 중 한 줄기 실낱같은 바람이 제 머릿속에 파고 들어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제 입에서는 ‘먹보다도 더 검은 죄로 물든 이 마음… 깨끗하게 되었네~♪’라는 찬송이 마치 녹음기 돌아가듯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 마음은 마치 풍랑이 멎은 바다처럼 잔잔해지며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주님께서 응답해 주신대로 그날 이후 저는 피의자에서 참고인으로 바뀌었고 저를 고소한 사람은 오히려 피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현란하고 능숙하신 솜씨로 해결해 주신 은혜는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저를 사랑하신다는 그 증표를 제 입으로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제가 어찌 해야 합니까? 주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합니까? 그저 한마디밖에 없습니다. “온몸 다해 주님을 사랑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