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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gif 우리나라 최대 명절중의 하나인 추석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 민족대이동을 하는 뉴스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우리 민족이 참 정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한국에 있을 때는 친가, 외가가 다 대구에 있어 매번 7~8시간씩 차를 타고 긴긴 여행을 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마냥 싫고 귀찮게만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외국에 와서 혼자 명절을 보내게 되니 이상하게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이곳에 올 때 인터넷 전화기를 챙겨온 덕분에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자주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엄마와는 거의 매일 통화를 합니다. 이번 명절에는 어떤 음식을 하고, 친지들에게는 무슨 선물을 할 것인지 세세히 말씀하시는 상기된 목소리를 통해 여러 가지로 분주하고 바쁘지만 기뻐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학기를 막 시작한 터라 이것저것 할 것이 많아 끼니 때우기도 바쁜 저에게 과일, 굴비 등 엄마는 자세히도 이야기하시곤 합니다.


요즘 엄마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제 생활의 낙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너무 자주 전화를 해서 엄마도 조금 지치신 모양입니다. 그러나 언제 들어도 활기찬 엄마의 목소리는 저의 기분까지도 좋게 만들어 줍니다.


아빠와는 시간이 맞지 않아 자주 통화할 수 없어 아쉽지만, 가끔 퇴근 후 이곳 시간에 맞춰서 전화를 하시지만 대부분 저는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곤 합니다. 얼마 전에 해변에 갔다가 낚시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낚시를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아빠와 함께 낚시를 다니면서 아빠를 기쁘게 해 드렸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어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만은 항상 아빠와 함께한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미국에 온 후 명성교회 유학생 언니, 오빠의 도움으로 좋은 교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명성교회 출신 유학생들은 어디를 가든지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대학부에서는 일주일동안 각자 묵상한 말씀을 주일에 함께 모여서 그 말씀들을 나눌 때 아주 큰 은혜가 됩니다. 이번 추석에는 대학부에서 송편을 빚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처럼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낼 수는 없지만 유학생인 우리도 추석의 기분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외국에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상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사는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모두 다 애국자가 된다고들 하는데 저도 이곳에서 우리나라 소식을 들으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부모님이 곁에 안 계시니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고국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당회장목사님과 부모님 그리고 많은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도 외로움을 견뎌내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전화통화를 하다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밥은 잘 챙겨 먹느냐, 학교생활 힘들지 않느냐?” 등 많은 걱정을 하시며 건강 챙기라고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함께 생활할 때는 몰랐는데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엄마, 아빠와 사랑하는 동생이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립고 고마울 뿐입니다. 그러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곁에 계시는 주님이 계시고 언제나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는 당회장 목사님이 계심으로 외로움도 힘든 것도 잘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제 침대 머리맡의 9월 달력을 보면 빨간색으로 써진 21, 22, 23일이 눈에 띕니다. 비록 이번 추석에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같은 명절을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유학생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송편을 빚으며 가족과 고향, 사랑하는 대한민국 이야기로 꽃을 피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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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gif 지루한 장마가 지나고 맑게 갠 푸른 하늘을 보니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아버지 어머니, 주님 안에 늘 평안하신지요? 어머니와 함께 논산 육군훈련소를 향하면서, 과연 제가 군 생활을 잘해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되어 잠을 설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부모님 밑에서 편안하게만 자란 저에게 군대는 유난히 낯설었습니다.


제가 살아왔던 모든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인 날들을 보냈습니다. 제가 훈련소에 있던 때에는 신플루가 급속히 퍼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훈련소 퇴소 1주일 전에 39도의 고열에 시달렸고, 병세가 심해진 전우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생겼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빨리 낫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신종플루 판정도 받지 않고 병도 치료되었습니다.


독감을 앓듯 그렇게 힘들었던 훈련소에서의 생활이 지나고 저는 속초에 있는 한 포병부대로 자대를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선임들과 지휘관을 만나게 될지, 특별한 특기가 없는 저는 어떤 보직을 받게 될지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저는 주님의 은혜로 좋은 선임들을 만났고, 사격지휘병이라는 보직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격지휘병이란 사격훈련을 할 때 사격제원을 내리는 직책입니다.


이등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배울 것도 많아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기도하고 찬송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신우회'라는 기독교 동아리에도 참여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어떤 조직에 소속되는 것을 꺼렸었는데 군대에 있을 때만큼은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고 싶었고, 여러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 스스로 이전보다는 좀 더 철도 들고 강해져서 뭔가를 꼭 이루어내고 싶다는 열망이 저를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한 것 같습니다.


군대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들 속에서 저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찾게 됩니다. 저는 이곳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병은 일을 많이 해서 일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일하고 뒤돌아서면 또 일해야 하는 계급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예배 참석도 가끔 못하게 되어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당회장 목사님처럼 얼차려를 받아가면서까지 교회에 가겠다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제 다음 달에 상병으로 진급하는데 그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주일성수를 하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습니다. 당회장목사님 말씀처럼 더 굳센 믿음을 가지고 제 꿈과 소망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는 아들이 되려 합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도 부모님과 교회 생각이 간절합니다. 어서 제대해서 주일찬양예배 후 목사님께서 주시는 청년들의 영원한 간식, 빵과 라면을 먹고 싶습니다. 자상한 미소로 “대학 청년부, 손들어 보세요!”라고 하시던 목사님의 모습이 너무나 그리워집니다.


아버지, 어머니, 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성도님들께서 군입대자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씩씩한 아들이 되어 돌아가는 날 부모님께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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