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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때그때 주어지는 환경이 얼마나 감사한지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감사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스무 살에 목회를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쓰신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당시 저의 환경은 모든 것이 좋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 불러 주셨다는 사실이 감사해서 50리를 걸어 다니며 말씀을 전하고 목회를 했습니다.

1963년에 가게 된 두 번째 교회도 어려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이 저에게 상을 따로 차려 주고 방도 다른 방을 만들어 주면서 거기서 지내라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이불 하나 가지고 여러 식구가 이쪽 잡아당기면 저쪽으로 가고 저쪽 잡아당기면 이쪽으로 오고, 추우면 이불이 없는가 보다 하고 그랬는데, 혼자서 자고 혼자 상을 받으며 살게 되었으니 날마다 그것이 감사했습니다.

 

그 다음에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있던 교회는 사택이 따로 있어서 집사람하고 같이 살림을 했습니다. 물론 교인도 적고 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한 가지 좋은 것은 사택 바로 옆에 우물이 있어서 물을 길어 오는 것이 얼마나 편리했는지 모릅니다. 시골에서는 보통 500미터나 떨어진 냇가에 가서 길어 오는데 여기서는 한 50미터만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기만하면 되니 너무나 감사해서 항상 제가 물을 길어다가 집에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석유 풍로를 샀습니다. 항상 나무만 때서 연기가 났는데 연기도 없이 파전도 부쳐 먹으니 세상에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라면도 금방 보글보글 끓고 심지에 불만 붙이면 불길이 금방 올라오니,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은혜를 받아 이렇게 석유 풍로를 쓰고 있나 너무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니 점점 더 잘되게 하셨습니다.

서울로 와서 1970년 2월 1일부터 목회를 하는데, 교인도 몇 명 안 되는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한 200명 되는 교회에 오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시내 버스를 타고 서울 운동장까지 돌아서 종점에서 종점으로 가는데 수십 곡씩 찬송가를 부르면서 기도하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또 명일동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1980년 7월 6일부터 명일동에서 개척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큰 교회 목회는 절대로 제가 소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더 주시지 않아도 감사합니다. 이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이 세상을 떠나도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저 열심히 목회를 했더니 교회를 두 번이나 짓는 동안 아무 시험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지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저의 경험으로 보면 감사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십니다. 감사할 만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인격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 삶에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