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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左. 거대한 비석(오벨리스크) 밑에서 결혼식 사진을 찍는 악숨의 신랑신부. 비석의 모든 면에는 문을 닫아 놓은 것과 같은 디자인이 조각 되어 있다. 이러한 비석들이 산재하여 있고 작은 비석들까지 200여개가 발견되었다. 배경에 있는 교회는 법궤를 수호하는 성 마리아 시온교회이다.
사진 右. 고대 비석들이 여러 겹으로 서 있는 비석 공원. 배경에 가로 누워 있는 돌은 비석을 만들다가 만 거대한 돌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옆으로 무너져서 부러진 비석이 세계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사진의 맨 오른 쪽으로는 악숨 박물관이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근동(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지금의 이라크)에서 왔으며, 그의 후손들은 히브리 민족을 이루어 아프리카의 이집트에서 430년간 자유민으로, 또 종으로 살다가 탈출하였습니다. 근동(아시아)으로 돌아온 히브리 민족은 가나안에 이스라엘이라는 왕국을 세우고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를 거치며 번영을 누렸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에서 살았던 그들의 과거 경험 속에는 아시아적인 정신세계와 아프리카적인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36년을 살아오는 동안 언어와 생활방식, 학교, 군대 등 많은 부분에서 일본화되었듯이, 히브리 민족은 아예 이집트 속으로 들어가서 430년을 살았으니 얼마나 이집트화되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집트는 남쪽으로 수단과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까지 영향력을 뻗친 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북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약 50분 정도 가면 악숨(Aksum, Axum)이라고 하는 인구 7만 명 정도의 도시가 나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한때 아프리카에서 무역과 국제관계를 주도하며 영향력을 발휘한 적이 있습니다. A.D. 3세기에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사람 마니(Mani)는 “이 지상에는 네 개의 위대한 왕국이 있는데, 첫째는 바빌론 왕국이고, 둘째는 로마 왕국이고, 셋째는 악숨 왕국이고, 넷째는 중국 왕국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기원후의 관점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시바의 여왕이 악숨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시바가 어디인지 아직도 논쟁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악숨이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에티오피아에서 동쪽으로 홍해 건너편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어디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도를 보면 악숨(에티오피아)과 아라비아가 거의 붙어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고고학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볼 때 악숨의 고대어는 셈족어 계열로서 이는 근동(아시아)과 관계가 있으며, 특히 아라비아 반도의 남쪽에 있는 나라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악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B.C. 10세기에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 사이에서 낳은 아들 메네리크(Menelik) 왕의 후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메네리크가 아버지 솔로몬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법궤를 가지고 와서 악숨에 보관하였다고 하며, 악숨의 중심에 있는 성 마리아 시온교회에 그 법궤를 모신 곳과 지키는 사제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 굴지의 방송이나 작가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법궤를 보려고 했으나 거룩한 법궤를 아무나 볼 수 없다며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에서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관습을 살핀 결과 여러 가지가 유대인들과 비슷하여(일설에는 DNA까지 같다고 함) 그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많은 에티오피아인들이, 특히 악숨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살고 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90년대에도 많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이주해 왔는데 그들 대부분이 악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성경에서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 만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시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시바의 여왕이 … 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 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열왕기상 10:1-10).

지난달 고고학 현장 탐사차 악숨에 갔을 때 “아니,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존경하여 잠깐 다녀온 줄 알았더니 살다 왔나 보죠?”라고 했더니, 악숨 시의 고고학 담당직원이 “원래 남녀 사이의 일은 시간이 지나야 뭔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되지요.”라고 해서 모두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시바에서 나는 산물 중 유향이나 몰약 등은 최상품이었다고 합니다. 신구약 성경시대에는 유향과 몰약이 국제무역상품의 주종이었으며, 상등품은 황금처럼 귀한 값이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시바에서 나는 유향과 향품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증거가 있습니다(예레미야 6:20). 예수님께 드린 선물에도 유향과 몰약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한국으로 돌아 에티오피아로 선회하게 된 것은 명성교회의 아프리카를 향한 비전과 기도와 땀과 수고의 흐름에 따랐을 뿐입니다. 명성교회가 아디스아바바에 병원과 교회를 짓고, 또 의학대학을 지으며 10년을 하루같이 봉사하며 뿌려온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악숨은 고고학적으로 대단한 유적이 많아서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특히 A,D. 1세기부터 3세기경에 세워진 비석들이 200여 개 있는데 그중에서 큰 것은 500톤가량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만든 비석(영어로는 obelisk 또는 stele) 중 이집트의 유명한 오벨리스크보다 더 웅장하며, 높이가 33미터 정도 되는데 이것은 12층 건물의 높이입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에게 탈취당하여 로마에 세워졌다가 2008년에 귀환한 비석도 있습니다. 비석들 중에는 닫힌 문 같은 디자인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멋진 조각이 새겨진 비석도 있습니다.

작년 11월, 김삼환 목사님과 일행이 명성교회가 아디스아바바에 건축한 굿 뉴스 처치 헌당식에 참석한 후 에티오피아의 다른 지역에도 도움을 주고자 악숨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악숨을 방문한 후 악숨의 고고학 발굴에 대해 더욱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저는 지난 4월, 에티오피아 문화재청에서 기술적인 지표조사 허가서를 받아 악숨대학교 교수들과 함께 현장조사를 했습니다. 악숨에는 이탈리아, 캐나다, 미국 등 서양의 고고학자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 정부는 한국 고고학팀과 전적인 협력관계로 일하고 싶다는 적극적인 뜻을 표현해 왔으며, 더 나아가 악숨대학교 고고학과 학생들을 현장실기와 이론으로 훈련시켜 에티오피아의 고고학자로 길러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악숨 고고학 발굴은 학문적인 탐험이지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는 기회는 하나님께서 명성교회에 주신 귀한 사명입니다. 첫 발굴은 내년 1월과 2월 중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악숨 발굴 진행과정에 대해 계속해서 전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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