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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복음의 씨앗으로 이 땅에서 헌신한 선교사님들이 안장되어 있다. 1890년 7월 J.W.헤론이 최초로 묻히면서 외국인 묘지(외인묘지)로 시작된 양화진 선교사 묘지는 한민족의 지난했던 근대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미국 테네시대학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미 20대에 모교의 교수로 초빙 받은 수재였으며, 현재 세브란스 병원의 모태가 된 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했던 헤론을 비롯하여, 배재학당을 세우고 민주주의와 독립정신을 통해 기독교 가치관을 심어준 아펜젤러, 한국 선교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으며, 선교 초기 그의 흔적이 묻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언더우드등이 있다. 언더우드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 26세의 나이로 한국에 들어왔으며, 당시 기독교 전파가 불법인 상황에서도 언더우드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쳤다. 특별히 양화진 언더우드가의 가족 묘역에는 4대에 걸쳐 모두 7명이 묻혀 있다. 

 

 또한 남장로회 개척 선교사이면서 한글성경번역에 크게 공헌하였던 레이놀즈 선교사의 아들들이 양화진 묘지에 있다. 레이놀드 선교사는 히브리어에 정통하여 1910년 한글 구약성경이 나오는데 주역의 역할을 하였으며, 신구약 성경 한권이 온전히 출판되는 일에 쓰임 받았다. 레이놀즈 선교사의 묘지는 광주 호남신학대학 동산에 있으며 양화진 묘지에는 한 살이 되기 전 한국에서 죽은 맏아들과 미국에서 76세로 죽은 둘째 아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한편 여성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며 현 이화여자대학의 전신인 배화학당을 설립한 캠벨 선교사의 묘지도 있다. 캠벨은 1897년 10월에 남감리회의 첫 번째 여성선교사로서 중국인 양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1898년 10월 2일, 지금의 종로구 내자동에 여성들 대상의 학당을 열었다. 그리고 ‘여성을 아름답게 기르고, 꽃 피워내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배화학당’으로 이름 지었다. 캠벨은 한국여성들을 복음 안에서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하였으며, 27세 되던 해에 남편과 사별한 캠벨은 곧 두 자녀도 병으로 잃고 본인은 1920년 11월 12일 67세의 나이로 소천하였다.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는 145명의 선교사와 가족을 비롯하여 총 417명이 안장되어 있으며 이들은 젊은이로서 모국에서 누릴수 있는 수많은 권리들을 포기하고 당시 세상에서 가장 덜 알려지고 못 살았던 나라 ‘COREA'에 복음의 빚을 나누기 위해 헌신하였다.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경기도 용인시)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한국 교회를 위해 순교한 선조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세워졌다. 기념관은 한국기독교선교 100주년을 맞는 1984년에 한국 교회 20개 교단과 26개 기독교 단체의 대표 100여 명이 모여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를 발족하며 시작되었다. 마침 익명의 성도가 기증한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363,638m2(11만 평)의 부지에 기념관을 짓기로 결정하였고, 1989년 11월 개관하게 되었다.

 

 또한 2007년에는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 봉헌예배를 드린 후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세워진 기념비와 타임캡슐은 한국 교회의 연합이 만들어 낸 역사적인 행사와 집회, 그리고 그 결과물들을 후손에게 남기기 위함이다.
기념비에는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인 2007년을 상징하는 2007mm 높이의 화강암에 ‘부흥’이라는 글씨가 새겨졌고, 좌대는 100cm 높이로 만들어져 100주년을 상징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1884년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이래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숨진 순교자들에 관한 자료들이 있다. 순교자는 한국 최초의 세례교인으로 혹세무민죄로 2년간 옥고를 치른 후에 순교한 백홍준 장로(1893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7년 동안 옥고를 치른 후 순교한 주기철 목사(1944년), 6.25전쟁 당시 예배당을 비우라는 공산당에 의해 총살당한 박영근 목사를 비롯하여 손양원 목사와 조만식 장로 등 2,6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600여 명의 순교자 명단은 순교자 기념관에 헌정되어 있고, 소양 주기철 목사가 시무하다 순교한 평양 산정현교회의 사진들과 사용했던 성경 등 여러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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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박물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장로교 목사이자 고고학자인 교수 김양선(金良善)이 1948년 남산에 세운 기독교박물관과 매산고고관의 소장 자료 3,600여 점을 모교인 숭실대학교에 기증하여, 1967년 10월 숭실대학교 부설 한국기독교박물관으로 새로 발족하였다.
 소장 유물은 국보 제141호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국보 제231호 석제청동기제작용범, 보물 제569호 안중근 의사 유묵등의 각종 문화재와 그리스도교 관련사료 및 유물, 고대 중국과 로마시대 유물을 포함하여 6,769점에 이른다.
 전시실은 고고자료실·한국교회사자료실·실학자료실·한국독립운동사자료실로 나뉜다. 이 중 고고자료실에는 암사동에서 출토된 대형 빗살무늬토기, 다뉴세문경, 석제청동기제작용범, 비파모양동검, 가는청동검, 모자곡옥(母子曲玉) 등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교회사자료실에는 한국 개신교의 전래·수난·발전에 관한 자료와 유물, 천주교에서 개신교에 이르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사상을 소재로 한 회화·조각·공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예수성교전서, 예수성탄미상지성경, 누가복음서, 천로역정 삽도 등의 귀중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한편 실학자료실에는 각종 지도와 서책등이 있으며,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실에는 안중근 의사 유묵과 3·1독립선언서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사료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개관 이래 15차례의 주요 유적 발굴조사 활동을 벌이고, 박물관도록·매산국학산고·박물관총서 등을 발간하였다. 특별전시회로 1968년 고(古)신문전 및 한국고대토기전, 1969년 이조민속공예전, 1970년 전국대학박물관 연합전시회, 1971년 ‘1920년 이전 기독교관계도서전시회’, 1972년 한글필사본전시회, 1977년 숭전 80년 사진전시회, 1985년 서둔동유적 출토유물전시회, 1989년 독립운동사자료전시회, 1991년 지리·천문도 특별자료전 등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