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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생활하는 동안 누구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지 않고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처장까지 승진할 수 있었고, 3년간의 미국생활과 2년간의 북한생활, 30여 개국의 공무여행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공기업 임원으로서의 직무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이 어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작년 여름에 한 차례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그 어떤 사람도, 어떤 권력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 후 제 믿음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믿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보이는 믿음(코람 데오)으로 성숙해졌습니다.
퇴직 후 한 달간의 여유를 즐긴 후 7월부터 주신 새 직장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터임을 믿습니다. 대산열병합발전(주)의 CEO인 제 집무실의 중앙에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그림이 걸려 있고, 10년이 넘도록 전파선교사로 섬겨온 극동방송에서 보낸 십자가가 걸려 있어 처음 보는 사람들 중에는 이곳이 사무실이냐고 놀라는 이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 성화에 새겨진 “Where are you going?”이란 문구는 주님의 부활 후 실망하여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처럼, 나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안 좋은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거울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많은 인물 중 요셉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는 요셉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요셉뿐만 아니라 그 주변과 범사가 형통하게 된 것처럼 나를 통하여 내 주변이, 특히 새로 시작하는 회사가 형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심히 부족한 저를 세워 영광 받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형통한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거짓과 불법과 교만을 멀리한 채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하여 오늘도 성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바라보며 하루 일과를 주님과 함께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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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항상 마음에 평안이 없었는데 주님을 영접하고 나니 마음에 평강이 생겼습니다. 또한 밝고 긍정적인 사고와 함께 가정의 문제들이 하나둘씩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으며 잘 지내오던 중 2010년 9월 27일, 형제들과 친척집에 다녀오다가 그만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놓여 있던 36미터의 쇠파이프가 차 뒷좌석을 뚫고 들어와 나의 꼬리뼈 척추 쪽을 24센티미터 정도 관통하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형제들에게 기도하라고 외쳤고, 의연하게 구역식구에게 전화하여 기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피를 흘렸지만 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혈우병 걸린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잡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병 고침을 받은 것처럼 병상에서 주님께 매달리며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과 ‘예수는 나의 힘이요’를 마음속으로 항상 찬양했습니다. 저는 ‘왜 하필 내가 다쳤을까?’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고 당시 함께 있었던 형제들에게 “너희들은 다치지 않고 나만 다쳐서 다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의사선생님들과 간호사들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병원생활을 하는 저에게 어쩌면 그렇게 항상 밝게 생활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웃음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에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수술한 후에도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파상풍으로 위험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습니다. 8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으나 지난 5월 말에 퇴원하여 믿음생활 잘하고 있으며, 당회장목사님을 비롯하여 교구목사님과 구역식구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점차 회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올 4월에는 주님의 은혜로 작은아들이 결혼했으며, 이들 부부도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새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을 때 사모하는 마음으로 건축헌금을 작정하고 기도했지만 봉헌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합의금 조정이 잘되어서 그동안 못 드렸던 십일조와 건축헌금을 봉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극히 보잘것없지만 아름다운 성전이 잘 건축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봉헌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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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한 친구였던 “서희건설” 이봉관 장로님과 사모님을 대구 중앙교회로 등록시켜 주일 저녁 찬양대까지 하며 즐겁게 교회생활을 하였지만, 졸업 후에는 각자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였으며, 저의 교회 생활은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그 후 서울의 믿는 집안의 외며느리로 시집와서 옛날 즐거웠던 추억만 생각하며 교회에 나갔지만, 권사님이신 시어머님의 고된 시집살이와 형식에 치우친 교회생활은 도무지 기쁨이 없어 온전한 믿음 생활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86년에 삼익그린 아파트로 이사와 우연히 명성교회 저녁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시어머님의 핍박이 심했지만 본 교회 예배 후 명성교회 주일 낮 예배도 참석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한 가정에서 두 교회를 섬기지 말라는 시어머님의 강한 권고로 소천하신 후 늦게 명성교회 등록하였고 남편과 저는 새신자 교육까지 받으며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하며 명성교회에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남편은 남선교회 회장과 피택 안수집사 훈련 중 소천 하였습니다. 남편이 5년 동안 간암으로 병원관리를 받았지만 한 번도 예배와 맡은 직분을 소홀히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병중이지만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장애인 올라오는 자리에서 휠체어를 끌며 3부 실외 안내 봉사를 하게 하시고, 마지막 입원 했을 때 남편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너무나 큰 주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한 번의 통증도 없이, 신앙생활 잘하고, 화목하게 잘 지내라며 본인 성격과 같이 따듯한 봄날, 교구장님과 권사님들과 함께 드린 임종예배 후 편안하게 자는 듯이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슬펐지만, 감사했습니다. 남편에게 건강을 허락하셔서 아름답고 거룩한 성전이 완공되어 같이 안내 봉사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약정한 건축헌금을 즐거운 마음으로 다 드리고 나니 너무나 큰 주님의 사랑과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은혜가 마음 속 깊은데서 밀려왔습니다. 혼자 남겨진 저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위로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 모두(딸, 아들 가정) 명성교회로 인도하시고, 모든 것 형통하게 하시고, 부족한 저를 피택권사로 세워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저를 지키며 인내와 소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명성교회 사랑합니다. 당회장 목사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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