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화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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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임미진.정선언.박종근] “남편 분을 잃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습니까.”

29일 오전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 2층 복도에서 김권찬(56)씨가 전재숙(71)씨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전씨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맞잡았다. “많이 힘드셨지요.” 김씨는 지난해 1월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 농성자 사망 사건에서 숨진 고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 전씨는 같은 현장에서 농성을 하던 남편 이상림(당시 72세)씨를 잃었다.

용산 재개발 농성 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손을 잡았다. 유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이다. 사건 발생 1년9일 만이다.

이날 만남은 한국교회봉사단과 한국교회희망연대의 통합 총회를 계기로 주선됐다. 지난해부터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봉사했던 한국교회봉사단 측이 위로와 화해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피해의식 있어 당혹스러운 자리" 첫 만남 어색했지만

"우리도 고통…아픔 잘 알지요" 상처 감싸는 말 이어져


일부 유족들은 “복잡한 심경”이라고 털어놓았다. 1년 가까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정부와 대립해 온 앙금이 쉽게 떨쳐지지 않는 것 같았다. 고 이성수씨의 부인 권명숙(48)씨는 “(김권찬씨가) 조문을 오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만나뵙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아직 저희가 피해 의식이 있어서 이런 자리가 당혹스럽다”고 말끝을 흐렸다. 잠시 어색한 순간 속에 마른 기침이 밭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내 서로의 상처를 감싸려는 말들이 이어졌다. 김영덕(54·고 양회성씨의 부인)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버님 아픈 마음을 저희도 충분히 알지요. 우리도 1년을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김권찬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신 분들이 하늘나라에서 잘 계시길 비는 마음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여기가 시끄러우면 그분들께 방해가 될까 봐, 화해하는 마음으로….”

가장 연장자인 전재숙씨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전씨의 둘째 아들 이충연(36)씨는 이번 농성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은 정말 저희 유가족들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마주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아드님이 미워서 그런 게 아닌데, 이 마음이 언제나 가라앉을는지….” 전씨의 목소리는 잠겼고, 유족들의 고개는 숙여졌다.

총회장 한켠으로 자리를 옮긴 뒤엔 서로에 대한 질문이 간간이 이어졌다. 한 유족은 “돌아가신 김 경사가 몇 살이셨느냐”고 물었다. “서른 둘에 아홉 살짜리 손녀를 남기고 갔다”는 김권찬씨의 답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고 김 경사의 어머니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얘기에 또 다른 유족은 “우리 모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얼마나 힘드시겠느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대화 장소엔 봉사단 목사 여섯 명이 함께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리를 주재한 봉사단 대표 김삼환 목사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다는 말이 있다”며 화해를 당부했다. 1년 가까이 농성자들과 함께했던 최헌국 목사는 “아직 일부 유족들은 수사 결과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고, 농성에 가담했던 분들이 구속돼 있는 등 아픔은 남아 있다”며 “이른 시일 내에 모든 것이 마무리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글=임미진·정선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