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핵심은 간구가 아니라 교제이다. 

                


 

  

기도의 핵심은 간구가 아니라 교제이다.

 

 


 

기도의 핵심은 무엇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시간낭비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기도제목을 아뢰기에 바쁘다. 이것은 응답을 목적으로 할 뿐 하나님과의 교제는 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왜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해줄 수 있기에 필요한 존재일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장 소중히 여기라. 충분히 하나님을 찬양하라. 충분히 하나님을 예배하라. 하나님을 묵상하고, 송축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데에 집중하라. 그런 후에 기도제목을 아뢰도 늦지 않다.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 기도시간을 구하는 것으로 다 채워야만 하나님이 들으시겠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묵상하고 송축한 후 구하는 것은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오히려 이 기도를 더 기뻐하시고 응답하신다.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집중하는 기도가 왜 중요한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묵상하고 찬양하다 보면 내 자신이 주님을 닮아가게 된다.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됨으로써 더욱 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주님과의 교제에 집중하면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주님을 위한 사명에 불타게 되고, 헌신에 불을 붙이고, 더 큰 열심을 갖게 된다.

주님과의 교제에 집중하는 기도는 신앙생활에 풍성한 열매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5장에 말씀하신 것처럼, 저가 내 안에, 내 가 저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교제할 때, 하늘로부터 영양분이 공급되어 신앙생활이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 저절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다시 말하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생략된 기도가 왜 위험한가?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없이 단순히 구하는 기도만 한다면 하나님을 닮을 수 없고, 오히려 욕심만 더 가득하게 된다. 구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그 구하는 것을 얻겠다는 집념이 더 강해지고, 구하는 것을 얻고 싶은 욕망이 더 강렬해지고, 그러다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품기 보다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내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악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을 닮기보다는 세상과 마귀를 닮은 존재로 더욱 추락하는 것이다.

충분히 주님을 찬양하고 교제하지 않고 구하게 되면, 온갖 잡생각이 나를 사로잡아 중언부언하게 되고, 많은 시간 기도한 것 같은데 무엇을 구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은 사소할 수 밖에 없다.


교제에 집중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목적이고 구하는 것에 집중하는 기도는 욕심이 목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거나, 그 사랑이 결핍된 자는 기도의 초점이 욕심으로 맞춰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그 사랑이 더 커지는 자는 기도의 초점이 하나님과의 교제로 맞춰진다.

그러므로 관건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다.


기도의 핵심이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몇 가지 구하고 나면 기도할게 없게 되는 것이다.

기도의 핵심이 하나님의 교제가 되면 얼마든지 더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다. 구할 것이 없어도 그저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교제하는 것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상 만나는 관계는 간단히 인사하고 용건부터 말하고 용건만 말한다. 그들은 친밀하지도 않고 서로를 사랑하지 않기에 그렇게 한다.

그러나 부부관계나 이성관계는 용건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용건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저 서로를 사랑하기에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할말이 없어도, 용건이 없어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용건이 되는 것이다.

기도할 때 용건부터 말하고 용건만 말하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업상의 관계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용건만 말하며 일어나지 않는다. 굳이 용건이 없어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고, 굳이 용건이 없어도 많은 시간을 기도의 자리에 있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기도의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용건부터, 용건만 말하고, 볼 일 다본 사람처럼 일어나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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