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순(53·여)씨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병명은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 엉덩이뼈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병이다. 인공관절 수술을 4차례나 받았지만 통증은 여전하다. 한씨는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아들(30)도 두고 있지만 틈틈이 간병사로 일한다. 치료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씨는 이른바 ‘원폭 피해 2세’다. 그녀의 부모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피폭된 피해자다.

 

 정부와 민간단체 등에 따르면 당시 현지에서 원폭 피해로 사망한 한국인은 7만 여명. 이들 가운데 한씨 부모처럼 생존한 이들은 2600여명이며, 이들의 자녀인 ‘원폭 피해 2세’는 7000∼1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에서도 한씨처럼 원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대략 30%(2000∼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장을 맡고 있는 한씨는 8일 “원폭 피해자의 2·3세대 자녀들 중 일부는 백혈병과 무혈성 괴사증, 다운증후군, 정신지체 장애, 골다공증 등 다양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면서 “피폭자 자녀라는 게 주위에 알려지면 결혼과 취업 등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숨죽인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은 한국교회였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회장 홍기숙)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가 처음 제기된 1970년대 초반부터 40년 가까이 해마다 원폭 피해자들을 지원해오고 있다.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를 비롯해 피해자 치료·생활비 지원을 위한 바자회 개최 등 다각적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최소영 총무는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민간단체에서 해오고 있는 셈”이라며 “원폭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법률도 아직 없는 현실이어서 2000년대 들어서서는 지원법률 제정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연합회에 이어 대표적인 기독교 연합봉사기구인 한국교회희망봉사단(대표회장 김삼환 목사)도 팔을 걷어부쳤다. 희망봉사단 김종생 사무총장은 “한국내 원폭 피해자들은 일본내 피해자들과 달리 우리 정부나 미국 정부로부터 관심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한국사회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인 이들을 섬기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봉사단도 원폭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핵심 과제로 정했다. 17∼18대 국회에서 원폭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부부처 등에서 예산 등의 문제로 반대해 통과되지 못했다. 희망봉사단 등이 준비 중인 법안은 ‘(가칭)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와 그 자녀의 실태 조사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이다.

 

 법안에 담기는 주요 내용은 국무총리 산하에 ‘한국인 원폭피해자 지원위원회’ 설치, 한국인 피해자 및 피해자 자녀에 대한 의료지원, 한국인 피해자 실태조사, 피해자 및 자녀에 대한 수당 지급 등 8개항이다. 이를 위해 이재영(새누리당), 이학영(민주통합당) 의원 등이 적극 나서기로 했다.

 

 8일 오후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김삼환 목사)에서는 희망봉사단 주최로 ‘원폭피해자 가족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원폭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한국교회가 이들을 보듬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기도회 참석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 자녀를 지원하는 한편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명성교회는 원폭 피해자 2세 환우회에 승합차량을 전달했다. 김삼환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통당하는 이웃을 돌보는 선한 이웃의 직무를 맡기셨다”면서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실제적인 도움을 드리는 한편 국가적인 지원이 제도화되도록 함께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