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이 주는 진정한 축복.             이사야 35:1-10.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축제(Mass)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을 축하하는 축제의 날이라는 의미합니다.

 


이 축제는 한 사람이 태어난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탄생이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세계적인 축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평화의 축제요, 축복의 축제요, 사랑의 축제요, 감사의 축제요, 기쁨의 축제요, 구원의 축제요, 생명의 축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은 온 인류에게 큰 기쁨과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주님은 죄인인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육신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화려한 츄리나 장식하고, 산타 할아버지가 와서 선물이나 주고 간다는 날도 아니요, 백화점의 바겐세일의 날도 아닙니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만드는 날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운동의 절정인 성탄은 마땅히 주님께 대한 찬양과 경배, 감사와 영광이 돌려져야 할 것입니다.

 


성탄은 나를 위하여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악을 내어놓고 자복하며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인간이 죄인임을 알리는 날이요, 예수만이 인류의 참 메시야 임을 알리는 날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자이심을 천하에 알리는 날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통하여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알리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은 장차 메시야가 올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약 2,700여 년 전에 장차 메시야가 올 것을 내다보면서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오시면 획기적인 변화가 우리에게 올 것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본문을 중심으로 “성탄이 주는 진정한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참된 성탄의 의미를 깨닫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성탄의 축복은 인생을 회복시켰습니다.

 


본문 1절에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라고 했고, 5절-6절을 보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광야, 메마른 땅, 사막”은 어떤 좋은 것도 낼 수 없는 기쁨이 없는 땅, 생명력이 없는 땅을 말합니다. 무엇을 생산해 낼 수 없는 결핍된 곳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지형적인 조건을 말하기보다는 “인간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인생의 비참함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죄로 어두워 졌기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용서할 줄도 모르고, 기쁨도 없는 인생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광야와 사막과 같은 메마름 심령은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도 열매 맺지 못합니다. 심령에 진정한 성탄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에 있는 죄인에게 성탄이 있음으로 놀라운 회복이 있음을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레바논, 갈멜, 샤론처럼 아름다울 것을 말하고 있는데 레바논은 팔레스틴 북쪽에 있는 곳으로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갈멜은 사마리아 근방에서 가장 토지가 비옥한 곳으로 풍요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샤론은  지중해를  중심한  대  평원으로서  팔레스틴의  꽃동산이라고  불리우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광야,  메마른 땅,  사막이 이렇게 변화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신약시대의 복음운동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심령이 변화될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메시야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회복이 되기 때문에 3절과 4절에서 우리에게 큰 사명을 주고 있습니다.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고, 겁내는 자에게 굳세게 하여 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희 하나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가 오신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약한 손, 떨리는 무릎, 겁내는 자”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무기력, 무능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을 말합니다. 이제 용기도 잃고 생명도 잃어버린 인생을 의미합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인생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무능한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적으로 강하게 하라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의 등장과 함께 인생이 놀랍게 변화될 것을 극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5절과 6절 초두에 “그 때에”, “그 때에”라고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메시야이신 주님이 오시는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저는 자가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가 노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경, 귀머거리, 저는 자, 벙어리라는 것은 인간의 절망적인 상태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불구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인생의 변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생은 완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약 700여년 후에 오실 메시야를 내다보면서 이렇게도 감격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메시야이심을 증거 하시기 위해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귀머거리의 귀를 열어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의 눈만 뜨게 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우리의 신령한 눈을 뜨게 하시며 영적 세계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눈뜬 소경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육신의 눈은 떴지만 영적 소경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도 못합니다. 신령한 세계를 보지도 못합니다. 세상소리는 잘 듣는데 영적 귀머거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아니 들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여기 “저는 자가 사슴 같이 뛸 것”이라는 것은 무능하고 소망 없는 인생이 삶의 감격과 기쁨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을 알고, 그 축복을 알고는 기뻐하는 인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벙어리 된 자로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한 자가 메시야를 만난 순간 그 입이 열려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인생은 삶이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7절에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막에서 시내가 흐른다는 것은 성도만이 가지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남자와 살면서도 만족을 누리지 못하는 수가성의 한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우리의 생명수가 되시는 주님 안에서만이 인생의 모든 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이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본문 8절에 “거기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사막은 길이 없는 곳입니다. 길이 있어도 바람만 한번 불면 있던 길이 묻혀버리는 곳이 사막입니다.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 대로가 생겼다는 것은 놀라운 이적입니다.

 


주님은 사막과 같은 이 세상에서 참된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미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함을 받은 세상입니다. 의인인은 하나도 없다고 선고를 받았습니다(롬3:10).

 


이런 절망적인 세상에 하나님은 한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메시야의 탄생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길은 거룩한 길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길은 거룩하기에 아무나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8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구속의 피가 흐르는 거룩한 길이기에 더러운 죄를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못하는 자 우매한 자들도 그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 곧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 음을 받은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대로는 안전한 길입니다.

 


본문 9절에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구속함을 받은 사람, 속량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도 해할 수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미 주님이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셨기 때문에 사단도 우리를 해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10절에 보면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노래하며 돌아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메시야의 구원을 통해서 “저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성탄이 주는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성탄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의 성탄은 돌발적인 사건도 아닙니다. 주님의 성탄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의한 위대한 구원운동입니다.

 

예수님은 한 시대의 영웅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오심은 이 땅에서 절망에 빠져 있는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의 오심은 사망의 종노릇하던 인생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의 오심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성탄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세력이 꺾였습니다.

주님의 성탄으로 말미암아 죄의 세력이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성탄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성탄은 참으로 인생들에게 큰 축복을 안겨주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우리 모두 주님이 오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져온 곳 : 
카페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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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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