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미국서 오신 유집사님을 따라 중국대사관 앞에서

개최된 탈북동포 북송 반대 집회에 갔다왔다.

11일째 단식중이던 박선영의원이 집회중에 실신했다.

 

9일째 단식중이었던 이애령 교수(탈북자 출신 1호 교수)는
눈물을 흘리며 탈북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카메라가 많았다. 경찰도 집회 통제를 위해 많이 와 있었다.
다른 날보다는 많은 분들이 오늘 참여했다.
그러나 나는 이애령 교수의 말에 가슴이 먹먹했다.

"처음 탈북했을때 천성산 도룡뇽을 살리자고 한국 사람들이

촛불을 드는 것을 보고, 저는 도룡뇽을 살리자고도 시위할수

있고, 동물도 소중히 여기는 이런 나라에
제가 왔다는 것이 너무 좋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요즘 생각하니 이렇게 많은 내 동포요 인간.. ,

사람들이 북송되면 죽고 죽음보다 더 무서운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는 걸 다 알면서도 아무도 촛불을

들고 나서지 않는걸 볼때 아 한국 사람들에게 탈북자는

천성산 도룡뇽만도 못한 존재인가 싶어 슬프다"고 했다.

효순이 미선이 두 여학생이 죽었을때 좌파세력들은

이때다 하여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시위하도록 도왔다.
천성산 도룡뇽을 살리자고,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지

말자고 할때도 그랬다.

 

그런데, 왜 지금은 침묵하는 것일까?

그 많던 촛불은 다 어디에 간 것일까?

 

사람의 목숨이 값으로 못 따진다면 두 여중생의 목숨이나,
서른 세명의 목숨도 아니 지금까지 죽은 수많은 탈북자들의

목숨도 똑같은데..

왜 지금은 꽹과리 치며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외치던

그들이 광화문 광장을 조용하게 놔두는 것일까?

학생의 인권을 위해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 교과부와도

싸우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과 분배의 정의를 위해서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추구하는 이들이

인권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수 없고, 언론의 자유도,

이동의 자유도, 죽을 자유도 없는 북한의 동포들을 위해서는

단 한 마디도 안하고, 촛불 한개도 들지 않는 걸까?

화가 났다.

자신들의 노선과 사상을 위해서 필요할때만, 사람들을 선동하고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다들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고,
정치를 위해서는 수많은 방법과 수단을 써서 시위도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난리를 쳐야 할때는 아무도 난리를 치지 않는다.

한국은 배가 부르다. 등이 따뜻하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본 사람들은 탈북자와는 무관하고,

아무 관심도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만약 내 가족이 지금 중국 공안에 잡혀 있다면
나는 통장을 다 털고 모든 인맥을 동원하고 단식을 해서라도

내 가족을 살리고 싶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배가 부른 때문이다.

 

정교분리의 전통과 사회참여보다는 신앙으로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슬로건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이 있다.
내 교회 내 교단이 크고 잘 되면 이 슬로건 뒤에 숨어서 궂이
이 안락함과 편안함을 깨뜨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큰 교회에서 한번만 와도 오늘 중국 대사관 앞은

아마 교통 마비가 일어났을 것이다.

나는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아주 환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생명을 살리는 것을 눈감는 것은
마치 부모를 모시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드림 고르반이라고

했다는 이야기와 같은 거 같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천주교에 가는 이유가

교회가 약자를 돌보지 않는 것 같아서라는 리서치를

교회는 아직 모르는 거 같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나의 죄다.

내 자아와 내 문제와 내 상황과 내 삶에 갇혀서
남이 잘 안 보인다.

내 삶도 힘들다고 슬쩍 넘어가고 싶지만

오늘은 참 가슴이 아프다.

천국에 다녀왔다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예수님이 엄청 울고 있다고 했다.
아마 탈북자를 잡아주고 자원채굴권과 나무를 공급받는

중국의 악날한 칼 아래 붙잡힌 사람들
그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주님이 한켠에서 울고 계신게 아닐까? T T  

  
탈북자 동포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의 관점을 바꿔주셨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 제 마음에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들아,

 남한이 북한보다 더 위험하고 더 황폐하다.

 너는 모르는구나.

북한은 춥고 굶주리고 헐벗었고 까딱하면 수용소에

끌려가고 죽지만,

절박한 중에 나를 찾아 만난 이들이 많다.

그런데 남한은 축복과 번영과 경제적 부유함가운데

교묘히 숨겨진 쾌락과 나태와 자기만족과 교만의 독을 마시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있다.

그 몸은 편안하나 영혼은 불구덩이로 떨어지고 있다.

 

자기가 왜 도움이 필요한지 구원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디가 더 위험하냐?

누가 진짜 헐벗고 굶주렸느냐?"

 

사모님이 말씀해주셨는데, 미국의 어떤 분이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보니

북한에는 하늘문에 크게 열려 있고 크고 강한 빛의 무리들이

하늘에서 내려가고 있는데

남한에는 조그맣고 희미한 빛이 군데 군데 있는것이

전부였답니다.


사람들 보기에 북한은 엄청나게 가난하고 고통받는 나라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북한은 고난과 순교의 피를 통해

순결한 주님의 신부들이 많이 있는 곳인거 같습니다.

 

사람들 보기에 남한은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도록

축복받았지만

영적으로는 해골의 골짜기 같고,

자기의 고통을 알지도 못하는

영적인 문둥병 걸린 사람들이 즐비한 곳인가 봅니다.


북한 지하교회의 성도들이

남한 교회가 타락에서 회개하게 해달라고,

전쟁을 막아달라고 기도했다고 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정말 눈물흘려 기도해야 할 대상은 남한이고,

바로 나인거 같습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