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소수

 

(눅 17:11-19)

 

 

1. 구원 받음의 시험과 증거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가 지금은 똑같은

모습으로 있지만 언젠가 마지막 그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데려가심

으로 천국에 갈 사람과 버려두심으로 지옥에 갈 사람으로 구별될

것입니다. 마25:32-33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각각 분별하실 것

이라고 말씀하시고, 마13:47-50에서는 어부가 그물에 가득한

물고기 중에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지옥 풀무불에

던져 넣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후13:5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말씀하신대로

나 자신이 참으로 구원 받은 자인지 시험하고 확증해야 할 것입니다.

시험하고 확증하라 하신 것을 보면, 참으로 구원 받은 자에게는

그 구원 받음의 증거가 나타나게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증거는 무엇일까요?

 

 

2. 고침 받은 10명의 문둥병자 중 1명

 

   구원 받음의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는 눅17:11-19에 기록된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구원 받음의 증거에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기록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있던 문둥병자 10명이 예수님을 만나 멀리 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고, 그 문둥병자 10명은 예수님 말씀대로 제사장들에게 가다가 모두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1명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문둥병자 10명이

모두 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심으로 깨끗함을 받았지만 그 중 1명만이

고쳐주심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고, 그 1명에게만 예수님의 구원 선포가

내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아 깨끗하게 된

10명이 모두 다 구원 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 중에서 고쳐주심에 대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한 1명만이

구원 받은 자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원 받음의

증거 중 하나가 바로 구원에 대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림의 중요성

 

구원은 고침 받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단지 고침 받는 것으로

끝이라면 그것은 참된 구원이 아닙니다.

참된 구원은 고침 받은 자가 자신을 고쳐주신 하나님이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았다면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함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는 것으로 실제화 되는 것입니다. 9명의 문둥병자들처럼 죄사함 받았고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 돌아옴이 없이 여전히 자기 길을 가며, 또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는, 즉 롬12장의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의 삶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구원 받은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은 자기의 길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길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머리로 받아 이제 머리이신 예수님의 몸된 자로서

철저히 복종과 헌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엎드린다’는 단어는 ‘낮아진다’는 의미와 함께 ‘죽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은 나 자신을 죽이고

예수님 앞에서 완전히 낮아져서 철저히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례하는 것입니다.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이를

조금이라도 갚고자 자원하는 심령으로 충성스럽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구원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마음 보좌에 앉으셔서 다스리시는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증거가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사함은 받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왕이 되어 자신이 좋은 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마음대로 행하고 있다면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 삼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가 주관하며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국도가 고속도로와 나란히 방향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해도

고속도로일 수는 없듯이 자기의 길이 하나님의 길과 나란히

방향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길이 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 해도 그것을 하나님이 아닌 자기의 생각에

따라 자기의 방법으로 자기의 힘으로 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길이

아닌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주인 삼고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시려고 상황을 종종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쪽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때 우리의 생각과 다른 쪽으로 되어 가는 상황임에도 그 가운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순종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임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주인 삼고 하나님의 길을 간다는 것은

자기의 상황이 분명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임에도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극심한 가뭄 가운데서 가루와 기름이

다 떨어져서 이제 아들과 단둘이 마지막 떡을 만들어 먹고

죽어야만 하는 분명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임에도 그 가운데서도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먼저 공궤하도록 명령하신 하나님께

순종한 사렙다 과부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에

철저히 복종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할 때 사단은 자기의 힘들고 어려움을 주장하게 하고 불쌍한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도록 함으로써 자기의 주인됨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지만, 그와 같은 사단의 궤계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없는 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를 먼저

공궤하였을 때 오히려 가루와 기름이 끊이지 않는 은혜를 받아

누렸던 사렙다 과부처럼, 그러한 사단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를

버릴 때 풍성히 받아 누리는 은혜가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고침을 받은 10명 중 1명, 단 10%의 소수만이 구원에

이르렀음을 기억하고, 이 10%의 소수에 들기를 사모하고

간구하십시오.

구원 받은 자는(고후13:5)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조남호목사

[서울대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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