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4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작은 성읍의 지혜자를 기억하라' 말씀 요약, 전도서 9:13~18,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오늘 전도서를 쓴 사람은 지혜자입니다. 보통 우리에게 솔로몬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을 발견하고 크게 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작게 여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지혜 자에는 그것이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크게 발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작게 여기는데, 그것이 큰 것이라고 발견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크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반대로 내가 작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나의 신앙을 진단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무엇이 큰지 드러납니다.
오늘 이 지혜자는 그 사람의 가난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지혜를 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혜가 가난에 가려집니다. 중요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에 가려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큰 것이 작은 것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삶에 큰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을 가리지 않도록, 우리의 신앙을 바꿀 수 있고 또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짧은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어떤 큰 왕이 인구도 적고 성도 작은 바로 그러한 곳을 에워싸고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입니다. 성을 둘러싸서 벽을 쳤습니다. 이것도 다 힘이 있고 능력 있는 군사나 나라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읍이 작아도, 성읍 주변에 벽을 쌓고 그 벽을 넘어서 그 성을 친다는 것은 상당한 자원과 시간과 사람들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성읍에 한 지혜자가 있었는데, 오늘 본문에 말하듯이 그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가난한 지혜자가 낸 방책으로 이 성읍은 구원함을 얻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구원함을 얻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략을 내었는지 아니면 외교적인 방법을 내었는지, 어쨌든 이 사람 덕분에 성읍은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람이 중요하고 놀라운 일을 행했지만, 이 사람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의 공로를 치하하지 않고 금세 잊어버립니다. 우리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많이 왜곡되는지 모릅니다.
현대 유럽의 교회의 몰락을 진단한 어떤 신학자는 유럽 몰락의 문제는 핵심은 세속화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것입니다. 결국은, 완전히 이제 교회가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아마 우리 대한민국도 이 망각의 길을 똑같이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가난한 지혜자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오늘 이 가난한 지혜자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어쩌면 예수님이거나 성경이거나 하나님이거나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가난한 성읍의 지혜자가 누구인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왜곡됩니다. 몇 년만 지나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그것이 사실에서 거리가 멀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작은 성읍에 이 가난한 지혜자를 기억하는 지혜를 갖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지혜를 귀하게 여기길 축복합니다. 지혜를 귀하게 여기라는 말은 지혜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는지를 우리가 다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에서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의 말들을 사람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였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읍을 구한 것은 지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이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말에 별로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종종 어떤 말이 우리에게 귀한가보다는, 누가 그 말을 하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소설 삼국지(三國志)에는 지혜자를 찾아가는 그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고, 지혜자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승리하는지가 참 많이 나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지혜가 있습니다.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지혜가 있습니다. 많이 못 배운 사람들에게도 지혜가 있습니다. 오늘도 가난한 자의 지혜를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그런 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특별히, 이 시대의 신앙은 가난한 자의 지혜처럼 보입니다. 신앙은 부자의 지혜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멋진 지혜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이고,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믿음의 지혜를 사모하고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5절의 이야기는 오늘 말씀에 너무 좀 슬픈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읍은 살아남았지만, 그 성읍을 살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신명기 8장 12절~14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백성들에게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라고 경고합니다.
또한, 신명기 8장 17절~18절에서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작은 성읍의 가난한 지혜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지혜로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잘하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자꾸 높이려고 합니다. 자꾸 내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가 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싱크(Think)와 생크(Thank)는 같은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하게 되면, 이 생각의 꼬리가 결국 하나님 앞에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많이 생각나는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이 가난한 지혜자, 작은 성읍의 지혜자가 많이 떠올려지는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능력이 다시 넘치는 삶으로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조용한 지혜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17절 말씀은 "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소리를 아무리 질러도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조용한 소리가 더 중요한 소리가 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을 신뢰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우리에게 능력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 더 잘 들리고, 더 멋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 잘 들립니다. 우리가 심지어는 이제 그 메신저가 메시지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메신저를 중요하게 고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도, 자꾸 성공한 사람, 부자들, 능력 있는 사람, 연예인을 데리고 오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조용히 들리는 말이 호령보다 더 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이 예배를 사랑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작은 성읍에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 작은 성읍에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이 작은 기도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는 기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도 작은 것을 기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혜가 있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는 큰 소리나 대단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자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곳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마지막을 보면, 지혜가 무기보다 나은데,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라는 두려운 말씀 하나를 전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마지막 말씀을 통해서, 또다시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혜를 귀히 여기고, 은혜를 기억하고, 조용한 지혜를 신뢰한다고 해도, 결국 그 지혜를 잇는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 역시 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지은 죄 하나가 마치 아이성 하나를 정복한 것에 실패한 것에 아간의 죄가 있듯이, 우리가 힘들게 지킨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또한 우리가 지은 죄 하나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지혜로 우리의 날을 갈고 또 우리를 돌아보는 은혜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작은 성읍의 가난한 지혜자를 기억하고 귀히 여기고 지혜를 사모하면서, 또 깨어 기도하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우리에게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