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2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기도라는 수련' 말씀 요약, 마가복음 1:35~39,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이자 하버드에서 셈족어를 연구한 배철현 작가가 쓴 '수련(修鍊)'이라고 하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도'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만이 새벽에 스스로 일어나 기도하는 존재다."라는 얘기를 합니다. 
   아침에 우리의 본능을 거스르고 일어나서 나를 마주하고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좀 구별된 존재로 만드는 조건일 수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도 아니고, 예사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두운 그 시간에 스스로 몸을 일으킨다는 것이 결단이고, 훈련이며, 수련입니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나온 우리는 수련자들입니다.
   책에서 저자는 기도는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내는 결단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섬세하게 가려내는 행위가 곧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도 틀린 기도는 아닙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단순한 기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기도는 구하는 것이고, 찾는 것이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께 없는 자로서 가는 자세가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 어떤 것을 더해 달라는 것만 기도가 아니라, 덜어내는 것도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결단만이 아니라, 내가 오늘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 무엇인지, 내가 굳이 갖지 않아도 되는 것이 무엇인지, 이것을 섬세하게 가려내는 것도 기도인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라, 원래부터 기도는 그런 훈련이었습니다.
   처음에 사막의 수도사들이 들어가서 기도할 때, 기도를 다른 이름으로 '비움'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채우기 전에 나를 먼저 적절하게 비워내는 것, 소유를 늘리기 전에 무엇인가를 덜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쓸데없는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생각들, 쓸데없는 욕심들, 쓸데없는 미움들, 그것을 섬세하게 가려내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그런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시작을 보면, 새벽에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기도를 하십니다. 그리고, 시몬과 베드로와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여기에는 좀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가셨지만, 시몬과 다른 일행들은 기도하러 간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예수님께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갔습니다.
   여기 모든 사람이 주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고쳐주어야 할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인정해 주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여기에 머물면서 다른 데 가지 말자"라는 그런 말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마을에 머물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기대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피곤한 많은 사역 후에도, 새벽에 일어나셔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새벽에 기도하신 후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실지, 무엇을 안 하실지를 분별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새벽에 기도 후에는, 오늘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하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신 그 이유와 부르심 앞에 다시 서셔서, 다른 가까운 마을에서도 전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루의 시작은 저녁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저녁에 해질 때 시작하고, 해질 때까지가 하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 후에 빛이 찾아오도록 하셨습니다. 빛이 있은 후에 어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 가운데 빛을 오게 하셔서, 우리의 아침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어두움을 물리치시고 빛을 주시는 것처럼, 어둠 후에 빛을 여시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 빛 앞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셨습니다. 새벽의 기도가 어쩌면 우리에게 간구하는 기도도 있지만, 분별하는 기도도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분별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미룰 것인가, 무엇을 오늘 행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이 새벽 예배이고 수련입니다. 시편의 저자들도 아침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시편 5편 3절을 보면,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새벽은 하루 중에서 아직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누구에게 상처받지 않았고, 아직 아무 일도 미루지 않았고, 아직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은 굉장히 깨끗한 시간입니다. 바로 이렇게 시작하는 이 시간에, 우리가 하루에 무엇을 하지 않을까 미리 가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편안한 길을 많이 내려놓으시는 스타일입니다. 이미 인정받은 곳에 있는 것은 굉장히 편안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편안한 길이 아니라, 사명을 갖고 움직이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 있습니다. 오늘 걱정하지 않길 축복합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걱정하지 말길 바랍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일, 쓸데없는 미래를 향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붙잡고 계속 끙끙 앓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그것을 내려놓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오늘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비교의 말을 내려놓고 뱉고 나서 후회하는 말을 하지 않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오늘 어떠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는 반응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웬만하면 화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하지 않을 것에 대한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새벽은 정답을 받는 날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정답을 찾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정답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그곳에서 홀로 그 답을 찾으셨듯이, 오늘도 이 자리에서 우리가 조용히 그 답을 구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될 것과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위해 서두르지 말길 바랍니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이 시간에 다 해낼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의 사실을 찾기 위해서, 오늘 새벽을 다 써도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결단을 하셨기 때문에, 누군가가 와서 "이 마을에 있어야 한다"라고 얘기했을 때에도, 예수님은 갈 길이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설득을 당해야 할 때도 있지만, 설득을 당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말처럼 들리는 모든 것에 다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 내게 주신 마음과 지켜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지켜내길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 위에 은혜 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이 새벽에 수련이 있는 사람들은 모든 일들 가운데, 주님처럼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복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기도할 때에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있길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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