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8 토새깨가 예배, 담임 목사님 '청지기 세계관' 말씀 요약, 마태복음 25:24~30,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오늘은 세계관의 시리즈 여섯 번째 말씀입니다. 우리가 청지기 세계관으로 잠시 우리에게 맡겨졌던 것들을 돌보는 자세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동안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보는 그러한 세계관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제 여섯 번째부터 마지막 열 번째까지는 우리가 그러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세계관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청지기 자세가 있는지 없는지를 굉장히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어떻게 쓰느냐, 내 것이 아닌 것을 어떻게 관리하다가 돌려주느냐, 이것이 굉장히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것도 정말 자기 것처럼 쓰다가 막 쓰다가 돌려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소중히 다루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돌려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과 몸, 우리가 가진 것이 다 우리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계관을 어렸을 때부터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만약에, 이런 것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지길 축복합니다.
그러한 청지기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몸도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거하신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청지기'를 뜻하는 헬라어 '오이코노모스'는 주인의 소유를 대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잠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그리고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가서 내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다 쓰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때에 잘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태 신학이라고 꼭 명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그냥 나와 있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잘 관리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잘 물려줘야 할 줄로 믿습니다.
훌륭한 청지기들은 내가 받았을 때보다 줄 때가 훨씬 더 좋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았던 이 지구가 우리가 물려줄 때는 더 좋은 땅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태어났던 이 대한민국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때는 더 좋은 대한민국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지기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청지기를 영어로 'Steward'라고 부릅니다. 고대 영어 'stig'(돼지 우리)와 'weard'(지키는 사람)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이것은 돼지 우리를 지키는 충직한 일꾼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것이 돼지우리가 되었던 소 우리가 되었던, 혹은 가정이 되었던 기업이 되었던, 내 작은 일이 되었던, 우리가 그것을 충실하게 잘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청지기 사명에 대한 어원은 시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편 24편 1절을 보면,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땅에 사는 모든 것, 거기에 사는 모든 존재들, 이 모든 것이 다 여호와의 것입니다. 여기가 우리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을 보는 관점의 첫 시작점은 "우리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이 갖고 계시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맡은 것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저 사람과 내가 똑같은 것을 맡아서 누가 더 많이 남기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것에 대해 주권을 갖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길이가 다 다릅니다. 그 달란트의 양은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주인의 평가는 우리가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가 아닙니다. 여기에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얼마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갖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해서 하나님은 질문하실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이나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이나 하나님의 칭찬은 똑같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평가는 내가 얼마를 남겼느냐가 아니라, 내게 맡겨주신 것에 대해서 얼마나 신실했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이라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을 신실하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을 마쳤을 때, 두루뭉술 하나님께서 넘어가지 않으시고, 분명히 따지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왜곡해서 인색하고 무서운 분으로 오해합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이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땅에 묻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의 청지기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은 우리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작거나 큰 능력들을 다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말 문제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내 것을 빼앗아 가시거나 인색하시다."라고 오해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점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움켜쥐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도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고, 하나도 나눠줄 것이 없습니다. 오직 안으로 안으로 깊은 곳으로 더 숨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담대히 쓰고, 담대히 나누고, 담대히 사용하는, 그러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더 담대하게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9절 말씀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청지기 세계관에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내가 잘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맡겨주십니다. 내가 신실하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더 귀한 것을 맡겨주십니다.
마치, 요셉이 보디발의 집을 귀하게 섬겨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애굽이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를 맡겨주신 것처럼, 다윗이 그에게 맡겨주신 양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가서, 늑대와 싸우고 곰과 싸우고 사자와 싸워서 그 양을 되찾아온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스라엘을 맡겨주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것을 맡겨주십니다. 이것이 청지기 세계관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작은 것을 맡겨도 그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귀하게 여길 때,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큰 것을 맡겨주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이 땅에 가진 그 어떤 것도 우리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땅에 살 때 잠시 그것을 관리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되는 것처럼, 그것을 향해서 집착하고 거기에 매여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청지기의 세계관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라면, 마땅히 맡은 자처럼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 것처럼 아끼고 인색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처럼 나눠주고 축복해 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사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마치 영원히 우리 것인 것처럼 사용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다 다시 가져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것을 맡은 사람들처럼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더욱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영국의 소설가 C. S. 루이스는 "나는 우리가 얼마를 드려야 하는지 딱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다만 안전하고 유일한 원칙은 우리가 여유롭게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드리는 것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도와줄 때도, 베풀 때도, 나눌 때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해야 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한테 편한 것보다 조금 더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맡은 것에 대해서 청지기 의식을 꼭 가지길 축복합니다. 그렇지 않고 영원히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복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우리가 움켜쥐고 나누지 못하고, 영원히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면, 오늘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는 귀한 날 되길 축복합니다.
그것이 분명히 나에게 고백이 되어진다면, 그때부터는 우리는 정말 건강한 청지기의 삶, 달란트를 받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들처럼, 신실하게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복되게 사용하게 되기를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귀하게 여기며 돌볼 수 있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