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2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사랑하며 기도하라' 말씀 요약, 마태복음 5:43~48,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사람과 똑같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세리, 죄인, 이방인도 하는 수준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사랑과 기도에 있어서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 안에 주님께서 주신 마음이 풍성해져서, 우리 모두가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사랑하며 기도할 수 있는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현대 교회를 얘기할 때, 'Consumer Church(소비자 교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가 교회의 문턱과 우리의 기준을 낮춰야 사람들이 온다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교회를 세련되게 편하게 사람들이 오기 좋게 만드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교회가 편리해지는 것도 문제가 없고, 우리가 모든 부분에 있어서 벽을 낮추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높은 기준을 갖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희석하고, 복음을 값싸게 만들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성도들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냥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만 만족한다면, 그다음부터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소비자 교회가 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세상은 아직도 교회를 향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불순한 의도를 갖고 교회를 폄훼(貶毁)하고, 또 훼방(毁謗)하고 비난하는 안 좋은 미디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하지 않나?"라는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준을 낮추면, 더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올 수 있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작년에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이라고 하는 미국의 정치 잡지에서, 사회학 및 공중보건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이드리스 칼론(Idriss Kallon)'은 기대치가 높았던 시절에는 학생들이 공부를 잘했지만, 기준을 낮추자 학업 성취도가 뚝뚝 떨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원리가 우리 신앙에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려면, 우리의 기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을 지키고 그 시간에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 낮 예배로 만족하지 말고 기도해야 되고, 새벽 예배를 사모해야 됩니다. 우리의 기준을 높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에 성숙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되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게 되며, 좀 더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똑바로 믿으려면, 우리가 특별히 사랑하고 기도하는 부분에 있어서, 세상과 달라야 하고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는 부분이 여섯 번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오늘 말씀에는 바로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낮은 사랑으로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는 사랑으로 만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사랑으로 만족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어떻게 더 높은 기준이 될 수 있는지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어보고 계십니다.
당시 사람들 가운데, 죄인의 표본은 세리였습니다. 세리도 그렇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방인은 우리와 전혀 다르게, 아주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낮은 존재였습니다. 그 낮은 존재들도 이 정도는 한다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베푼 사랑을 돌려주는 호혜(互惠)적인 사랑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하는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기준을 낮춰서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대로 아무런 상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도 그냥 딱 남들 하는 정도만큼 해서는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상'이라는 것은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에 있어서 기준이 높아지길 축복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본문 44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만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이웃이 아닌 원수는 미워해도 된다"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그러한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기준을 바꿔주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면, 우리의 삶의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생각의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뀐다는 것은 높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를 힘들게 하거나 대적하거나 박해하는 사람들까지도 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헌신까지 했는데, 사랑에 있어서는 기준이 안 바뀌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끼리 문제가 생겨서 갈등을 겪고, 그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들이 선교지에 지금도 실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향한 미운 마음을 통제하기 어렵다면, 기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아침에 원수를 당장 사랑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이 아침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나아가서,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하는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붙잡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바꿔주시고, 우리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까지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의 감정이 지금 당장 따라오지 않고, 내가 이 모든 것을 당장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과 우리가 다른 점은 바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기도합니다. 당장 우리의 모든 것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기도합니다. 나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함께 갈 때, 우리의 기준이 높아질 수 있고, 우리가 변화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해와 같습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다 비춰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비와 같습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다 비를 동시에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이 시간에도 저 나쁜 사람의 밭에도 비를 함께 내려주시고, 저 악인의 땅에도 해를 비춰주셔서 그들이 살아갈 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닮아가야 하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랑은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해를 비춰주시고 또한 비를 내려주시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48절에서 온전해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전해지는 것은 흠이 없거나 도덕적으로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원어의 의미는 '목적에 합당하게 성숙해 간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목적에 맞게 우리의 성품이 성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기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 나의 원수가 된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나한테 잘해 주는 사람한테 잘해주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적인 마음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본능을 넘어서야 합니다. 신앙은 좀 더 우리의 기준을 높여서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 저 멀리서 내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 나를 보면 휙 돌아서서 가는 사람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기도할 때 승리합니다. 미워하는 것, 저주하는 것, 남을 짓밟는 것은 승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승리의 정의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가치와 방향이 달라집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승리의 정의를 내려주고 계십니다. 오늘도 세상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의 기준과 수준이 높아질 수 있도록 주님을 닮아서 사랑하며 기도하길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