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5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기준이 삶을 바꾼다' 말씀 요약, 누가복음 12:41~48,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우리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거기에 쏟는 우리의 마음과 자원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월드컵에서도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과 16강을 목표로 하는 팀은 많이 다릅니다. 우리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품질의 기준을 낮추면 대충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그 품질의 기준을 높이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에 굉장히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기계를 바꿔야 하고 안 된 것들은 갖다 버려야 합니다.
   또한, 유명한 작가들은 아무거나 자기의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 작가들을 보면, 정말 수백 점의 작품들을 구워서 다 갖다 버립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기준이 높기 때문에, 그 기준에 이르지 않는 것들은 다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산업들, 항공기라든지 의료라든지 이런 곳은 기준이 낮아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가 세계에서 먹히는 이유는 기준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기준을 낮추는 순간부터, 우리나라 제품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제품이 됩니다.
   우리 신앙에도 여러 기준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헌신되고 많이 맡은 자는 기준이 높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이라도 조금이라도 많이 받은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연약한 사람들, 예수님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도 그들을 너그럽게 볼 것과, 그들을 향한 기준이 우리에게 너무 지나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2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하신 뒤에,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던지시는 말씀입니다. 주인이 다시 올 때를 준비하는 종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마지막 48절에서,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분량의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은 잣대나 기준으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기준'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자리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주신 것의 분량에 따라, 우리의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양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자리는 절대로 기준이 낮아져서는 안 되는 자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연약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져야 할, 특별히 남들에 대해서 가져야 할 기준은, 우리가 지극히 너그럽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을 오늘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알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로, 많이 받은 자에게는 기준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많이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목회자 안수를 받은 사람들,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 많은 일들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이런 자리에 대해서 분명한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을 보면, 오늘날에 목회자라고 말할 수 있는 감독에 대해서 여러 자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기준들이 있습니다. 가정의 기준, 신앙의 기준, 성품의 기준, 이 모든 것들이 다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야고보서에는 가르치거나 이끄는 위치에 가게 되는 사람은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조금이라도 남들을 이끄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우리가 우리의 기준을 높이지 않고서는, 선생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무엇이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의 기준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도, 내가 안수 집사나 권사나 장로나 목사라면, 우리의 언어와 예배와 기도와 사랑과 용서의 기준, 이 모든 것들이 높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도전받길 축복합니다. 이것은 남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아서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된다면, 남들만 볼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먼저 높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남에 대해서는 기준을 높이 세워가지고 무엇 하나라도 잘못하면, 그것을 다 잡아가지고 끌어내리고 더럽게 만들고 힘들게 하고 정죄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무한히 자비롭게 하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다 위선적이고 바리새인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 대해서는 기준이 높아져야 하고, 우리가 남들에 대해서는 자비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품어주고 용서하며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 얼바인 베델교회의 김한요 목사님께서 "제직(諸職)의 태도가 교회의 영적 고도를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습니다. 리더의 높이가 교회의 고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기관의 소망을 리더를 통해 봅니다. 리더가 소망이 있다 하면, 그 회사나 기관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준이 높아질 때, 우리 교회에 소망이 생기는 것이고, 우리의 수준과 고도(高度)가 함께 높아집니다. 그런 면에서, 특별히 우리 여름에 산성성회도 다가오는데, 기도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밥 먹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기도의 시간을 확보하시고 늘려가길 바랍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의 기준을 높이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반대로 연약한 자에게는 기준을 낮추어서 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 12:48)"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받은 것이 적고 맡겨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런 기준으로 너그럽게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늘 새로 오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 일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나 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히브리서에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도 성숙한 사람들이 있고, 아직까지 미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밀고 거기에 대해서 정죄하고 그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 14:1)"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너무 처음부터 몰아세우고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해서 상당히 너그러우셨습니다. 도마가 예수님을 의심했지만, 주님께서는 거기에 대해서 어떠한 정죄도 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회복시켜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연약한 자에게 그들을 사랑하고, 너그럽게 바라봐 줄 수 있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가 영원토록 낮은 자리에 있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장해야 할 때 성장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는, 거기에 대해서 또 다른 안타까움을 갖게 됩니다.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다시 초보를 배워야 한다고 히브리서 저자가 탄식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가 그 적은 기준을 통해서라도 성장해서, 결국은 다 장성한 분량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축복하며 돕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준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고, 아직까지 어리고 적게 받은 자에게는 주님께서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하십니다. 오늘 새벽에 우리는 스스로를 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희화화(戲畫化)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 중에서 제일 안타까운 사람들이 SNS를 너무 많이 쓰면서, 남들에 대해서 비판을 많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남들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면서, 그렇게 날카롭게 비판을 하는데, 자신의 삶은 기준이 낮습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젊은이들이 분노하게 되고, 그런 것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에 대해서는 기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내 언어나 성품이나 신앙의 모습에 대해서 기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남들에 대해서 특별히 연약한 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긍휼과 인내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봐 줄 때, 그들이 따뜻한 곳에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장성한 사람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거꾸로 살지 말고, 오늘 우리의 기준을 높이길 축복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안수 집사님들은 훌륭한 주의 종들입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기준이 없다고 해서 점점 낮은 곳으로 가지 말고, 우리의 신앙과 삶이 더 기준이 높아지시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또한, 권사 직분 받고는 그냥 느슨하게 살아가지 말고, 우리의 직분에 합당한 정말 주님 앞에서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그 귀한 자리를 놓치지 말고, 오늘 기준을 높이기를 축복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높이도 높여주셔서 영광 받으시는 귀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자신을 향한 기준은 높아지게 하고, 남들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길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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