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1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보라' 말씀 요약, 디모데후서 1:3~5,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보고 또 사회의 여러 인물들을 보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늘 봅니다. 그래서, 책도 "죽은 사람의 책을 읽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책이 50년, 100년을 살아남았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책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다 사라지게 되어 있고, 오직 중요한 책들만 남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된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We learn from history that we do not learn from history.)"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우리 교회와 신앙의 영역에서도 참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움'이라는 것이 주는 유혹이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새로움을 바라보고, 새로움을 쫓아가는데, 종종 그 끝에는 퇴락(頹落)과 또 해체와 멸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전 세계에서 역사상 머리가 좋았던 사람이 누구냐 하는 이런 논쟁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 뉴턴이 1675년에 로버트 훅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고 이렇게 썼습니다.
자기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뉴턴에 앞서 있었던 수많은 수학자들과 과학자들과 앞서간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섰기 때문에, 그가 멀리 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46주년을 맞아서 어디 위에 잘 서 있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 있지 않으면, "창수가 날 때 다 무너지는 모래 위에 지은 집 같다"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중요한 46년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그 위에 올라가서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 우리의 토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우리 믿음의 전 세대들의 어깨 위에 설 수 있어야 더 멀리 보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마음에 본능적으로 교만함이 있고, 자기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거인들의 어깨를 치우게 되면, 우리는 땅바닥에서 살아가고 땅바닥에서밖에 볼 수 없는, 그러한 우리의 시선의 한계를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멀리 보려면, 반드시 46년의 시간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디모데후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거의 맨 마지막에 쓴 서신서 중에 하나입니다. 그가 죽음을 이제 거의 앞두고, 영적인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에베소 교회를 이어받았던 디모데에게 주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핵심에는 '신앙의 계승'이라고 하는 주제가 흐르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편지가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보면, 디모데의 아버지가 헬라 사람인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신앙의 일치를 이루기 어려운 가정에서 로이스와 유니게는 남편이 헬라 사람이라는 핑계를 대지 않았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을 보면,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거인'이라는 말은 물론 위대한 리더들, 위대한 신학자들, 위대한 철학자들, 위대한 과학자들도 될 수 있지만, 우리 어머니가 거인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아버지가 거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로이스와 유니게가 역사의 이름을 남기는 신학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무슨 신앙을 가졌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여인들의 기도와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그것이 디모데를 길러내고, 멀리 볼 수 있는 주님의 종을 길러내며, 디모데가 초대교회에 중요한 기둥 같은 일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작은 어깨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어머니가 거인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예배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거인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의 신앙과 우리 교회의 전 세대들의 신앙이 그 시간과 세월이 헛되지 않고, 주님 앞에 올려지는 높은 제단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46년 역사 속에서도 이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어깨를 치우는 순간에, 우리가 갈 곳은 아래밖에 없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인의 어깨를 치워버리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열왕기상 12장은 우리에게 굉장히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백성들과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제발 노역과 세금을 좀 줄여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그 앞에 있는 수많은 거인들을 다 치워버리고, 자기와 같은 눈높이를 갖고 있는 낮은 곳에 있는 청년들의 말을 들었고,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분열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들 앞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거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46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그 역사를 가볍게만 여기고, 그저 새롭고 자극적인 것만 쫓아가다 보면, 우리는 르호보암의 길을 걷게 되고 말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주는 메시지는 너가 그렇게 좋은 외조모와 어머니 밑에서 컸으니까 너의 믿음이 훌륭하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너도 그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2장 2절에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계속해서 이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로, 디모데에게서 충성된 사람으로, 그리고 충성된 사람들에게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로 이 복음이 이어져 갑니다. 마치, 로이스에게서 유니게로, 유니게에서 디모데로 이어져 갔던 것처럼, 그 흐름이 이제 계속해서 이어져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선다는 것은 우리가 멀리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누군가가 우리의 어깨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내 위에서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은 내 안에 가두고 있으면 안 됩니다. 흘려보내야 합니다. 복을 흘려보내길 축복합니다. 그것이 어떤 복이든 간에, 우리는 흘려보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흘려보내지 않으면, 결국은 다 안에서 썩고 고이게 되고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 이 시대가 참 믿기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믿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점점 교회를 해체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전 속에서, 우리가 시대를 헤쳐나갈 힘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바로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또한 어깨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로이스가 없었으면 유니게가 없었고, 유니게가 없었으면 디모데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이 편지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한 사람의 신실한 믿음이 다음 세대를 세우고, 또한 그다음 세대를 세우고, 이것이 교회가 2천년을 이어온 역사의 방식입니다. 어떤 화려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극적인 기적이 매일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묵묵히 이어진 이런 믿음이 교회를 강하게 했고 힘 있게 했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뉴턴 같은 세상에 없는 두뇌를 가졌던 이 세상의 역사상 가장 똑똑했던 사람이,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더 멀리 보았다"라고 말한다면, 그럼 우리도 마땅히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립 46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는 교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벗어나야 할 것들이 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엘리야를 만나고 이러는 가운데, 제자들이 너무 흥분해가지고 여기에 장막을 짓고 살자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딘가가 좋으면 거기에 머물려고 하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위해서 "다시 내려가야 하고, 다시 십자가로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그 어깨 위로 올라가서 멀리 바라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교회,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교회, 그리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교회가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겨주시고 기쁘게 여겨주시고 또 기꺼이 사용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섬기는 이 교회의 귀한 역사와 전통과 믿음을 기억하면서, 다시 그 어깨 위로 올라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저 멀리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