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4 새벽2부 예배 손지목 목사님 말씀 요약, 창세기 4:16~17 & 사무엘하 6:21~22,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세상은 바로 하나님을 잊어버리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의 거대한 놀이 동산과 같습니다. 오늘 인류 최초의 도시로 가인이 세운 에녹성을 통해서,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세상 문화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놋(Nod)'이라는 땅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한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쫓겨난 곳입니다. 히브리어로 '방랑(放浪)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방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땅의 이름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인을 쫓아내시면서도, 친히 그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겠다고 그 약속으로 표(Mark)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놋' 땅에 도착하자마자 성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능력과 내 힘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겠다고 거대한 방어벽을 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자기 아들의 이름인 에녹을 따서 '에녹성'이라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름을 붙이고, 내 종족을 보존하겠다는 인본주의 문화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세상 문화의 뿌리는 이처럼 명확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마주하게 된 근원적인 불안과 결핍을 스스로 채우려는 시도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인본주의의 집약체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이 도시와 부딪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의 아내인 사라를 놓고 부딪혔고, 이삭도 같은 이유로 블레셋과 마찰이 있었으며, 요셉도 애굽에 팔려가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힙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도시 문화는 하나님의 빈자리를 인간의 문화로 채우려고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에 반하는 뿌리를 가졌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화가 바로 에녹성의 문화입니다. 에녹성의 문화를 '중독(中毒)'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중독은 어떤 대상에게 뇌의 통제권을 빼앗겨서, 그것이 없이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믿는 결핍 상태를 뜻합니다.
   오늘날에는 성형(成形)이 콤플렉스를 없애고 자존심을 높여줄 수 있지만, 성형 중독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무리하게 고가의 차를 사서 버는 돈을 다 차에 쏟아붓는 카푸어(Car Poor)도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대신에 세상의 것으로 결핍에서 오는 것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시대를 불문하고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우리에게 짐이 되고 스스로를 옥죄면서,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에녹성의 문화에 깊이 중독되어서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대표적인 성경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사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울은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분명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이스라엘의 왕이 세워졌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왕을 달라고 요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의 요구에 의해서 세워진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에녹성이었고, 사울의 비극은 바로 그 에녹성 한복판에서 시작이 된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9절에서는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좋은 양과 소를 남겼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양과 소의 좋은 것을 남겨둔 것입니다. 사울이 독단적으로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백성들이 원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사회윤리학자 리처드 니버(Richard Niebuhr)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에서 성도가 세상 문화를 대하는 5가지 태도를 정리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이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Christ the Transformer of Culture)'입니다.
   이것은 세상 문화가 타락했으나, 원래는 하나님의 것이었으므로,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 문화의 변혁자(變革者, Transformer)가 되자는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직장, 가정, 삶의 터전에서 세상의 문화에 중독되지 않고, 예수님 믿는 사람의 선한 영향력으로 그곳의 분위기를 뒤바꿔 놓자는 것입니다.
   문화의 변혁자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나의 삶을 주관하실 수 있는 유일한 한 분은 '오직 주님'이라는 굳센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사울 왕에게 이 문화 변혁자의 믿음이 있었다면, 그는 백성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한 가치관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문화로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울과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에녹성의 문화를 온몸으로 부숴버린 위대한 문화의 변혁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날, 다윗은 왕의 체면과 위엄, 세상 문화가 말하는 왕이 가져야 한 권위 체계를 완전히 던져버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기뻐하며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격렬하게 춤을 추었는지, 베옷이 벗겨져서 살이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뛰어 놀았습니다. 그때,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그를 업신여기고 비웃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다윗과 같이 오직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려는 그 자리에, 반드시 미갈과 같은 사람이 우리를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그 비웃음 앞에 다윗은 자신의 행동을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선포합니다. 다윗은 지금 평판과 체면이라는 에녹성의 문화를 끊어내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식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삶, 코람데오(Coram Deo)의 문화를 온몸으로 만들어 나가고 세워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세상이라는 거대하고 화려한 에녹성으로 출근하고 등교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학교에 나가면, 스피커를 통해서 "더 높은 성을 쌓아라. 남들에게 너를 과시해라. 돈과 명예와 아름다움과 좋은 것으로 너의 결핍을 메우고, 사람들의 인기를 좇으라."라고 똑같은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식화되어야 됩니다. 우리가 의식화된다는 것은 깨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음악에 빠져서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그 노래 흐름대로 좇아가느냐, 아니면 그 모든 것에 귀를 닫고 시선을 위를 보고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나의 삶을 세워가느냐, 우리는 흔들리지 말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짜 기준에 나를 맞추느라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길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예수 믿는 티 낸다고 유별나다고 미련하다고 조롱할지라도, 우리는 에녹성이 아니라 나를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겠다는 다윗의 선포를 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우리가 진짜 문화의 변혁자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고, 그 삶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 지혜와 명철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이제 에녹성의 문화를 끊어내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의지하면서, 이 세상에 코람데오의 문화를 온몸으로 만들어 나가는 변혁자가 되길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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