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2 새벽2부 예배 박현규 목사님 말씀 요약, 마태복음 27:11~26,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사람들이 이 세상의 수많은 소리를 모두 다 듣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 진리로 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수인 세상의 소리에 주파수(周波數)를 맞추다가, 정작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음성을 잘 구별해 듣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수많은 소리들에 둘러싸인 한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 십자가 사건 당시 유대 총독이었던 빌라도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야망이 상당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문제를 확대해서 로마 황제의 귀에 소동(騷動)이나 소요(騷擾)의 소식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고소 사건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에서 기인됐고, 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벌어진 일임을 그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서둘러서 이 사건을 덮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가만히 있으려 해도, 주변에서 소리가 들리면,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자꾸 신경이 쓰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빌라도의 주변에는 어떤 소리들이 있었습니까?
첫 번째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고발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23장에는 그 고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크게 세 가지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백성들을 미혹(迷惑)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예수님이 가이사 즉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했다는 것이며, 마지막 셋째는 자칭 왕이라 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사람들을 선동해서 큰 세력을 형성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택하신 제자들도 12명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작고 보잘것없으며,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여겨지던 갈릴리 촌구석 출신들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누가복음 20장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했습니다. 즉, 로마의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6장 15절에 보면, 왕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백성들이었고, 예수님은 오히려 그것을 피하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사건을 정치화시키지 않으면, 빌라도 총독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을 알고서, 마치 예수님이 로마 정부의 반기를 들도록 조장하는 민란(民亂)의 우두머리인 양 고소했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저들의 그 소리가 거짓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빌라도가 들은 소리는 백성들의 소리였습니다. 빌라도는 매년 유월절이 되면, 죄수 한 사람을 풀어주던 관례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상대자로 지목한 사람이 악랄한 죄수 바라바였습니다.
빌라도 생각에는 바라바가 워낙 죄질이 나쁜 죄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당연히 예수님을 풀어달라고 요청할 줄 알았지만, 일은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에게 선동당한 백성들이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소리쳤기 때문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5절에 보면,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백성들의 소리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리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기 위해서, 결국 잘못된 선택을 내리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말씀에 집중해 보면, 그때 빌라도에게는 이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거짓 소리와 백성들의 옳지 못한 소리만 들렸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을 때, 빌라도의 아내는 그에게 사람을 보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라고 경고하는 장면이 마태복음 27장 1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빌라도의 아내의 이름은 '프로클라 클라우디아(Claudia Procula)'였는데, 그녀는 유대교에 귀의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신뢰했던 인물로 전해집니다. 성령께서 그날 꿈에 빌라도의 아내에게 감동하셨고, 남편이 진리를 거슬러 잘못 선택하거나 결정하지 않도록, 사람을 보내 어떻게든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빌라도의 아내는 아주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아내가 몸매가 좋은 것은 1년 가고, 얼굴 예쁜 것은 3년 가고, 피부가 고운 것은 10년 가고, 음식을 잘 하는 것은 20년을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것은 평생 가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영이 맑아서 남편에게 때에 맞는 지혜롭고 부드러운 권면을 할 수 있는 아내는 보배 중에 보배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내가 지혜로워도, 남편이 어리석어 들을 귀가 막혀 있다면, 그 모든 권면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곁에 있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당신의 거룩하신 뜻을 우리에게 전하기도 하십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부부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귀가 열리고 입이 열려서, 나누는 모든 대화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그 뜻을 주고받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부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쓴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문서에는 그의 아내의 생생한 목소리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건이 다 벌어지고 난 뒤에 빌라도에게는 그날 아내의 소리가 또렷하게 기억이 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빌라도에게 당일 전달된 현명한 아내의 소리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 다수의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사실 이미 앞서 말한 모든 소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가장 귀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진리이신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에 "네 말이 옳도다"라고 답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 메시아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빌라도가 예수님께 그렇게 물은 것은, 로마에 대항하는 정치적 왕인가를 물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구약 시대로부터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려온 메시아인가를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사람들에게 수많은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지금 당신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셨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이 같은 예수님의 너무나도 평안한 모습과 담대한 권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권세를 느낄 때, 겸손히 자신을 낮춥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권세를 느꼈으면서도, 그 권세에 굴복하기를 거부합니다. 오늘날도 내 힘으로 살려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모든 주권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아는 겸손한 사람만이 주님께 나올 수 있는 줄 믿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만나 복종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오만함으로 날려버립니다. 그는 아내를 통한 성령의 음성도, 또 직접 배웠던 주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다수였던 유대 지도자들의 고발하는 소리와 백성들의 불의의 소리에 귀와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주일마다 빌라도는 귀가 굉장히 가벼울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마다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빌라도는 그때마다 귀가 가려운 것이 아니라, 저 지옥에서 가슴을 치고 이를 갈며 "그때 내가 아내의 소리를 들었더라면, 내 앞에 서 계신 메시아 그분의 말씀에 굴복했더라면"라고 말하며 통탄해 할 것입니다.
성경은 전도서 5장 3절에서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愚昧)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걱정을 많이 하게 되면, 자꾸 헛된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의 주변에 많은 우매한 소리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옳은 진리 하나를 붙잡고 결정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주위의 소리들 때문에, 혼란스러워서 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걱정이 많을수록, 주변 다수의 우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더욱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걱정이 많고 주변에 소리가 많아졌다면,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집중할 때이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할 때인 줄 믿습니다.
양이 그 주인의 음성을 분별하여 듣고 움직이듯, 우리 삶의 주파수가 주님께로 향해 있다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기도할 때 응답을 통해서, 찬양하는 중 가사를 통해서, 또 가까운 사람의 입을 통해서, 때로는 운전하는 중 번뜩이는 한 단어를 통해서, 잠을 자다가 짧지만 아주 강력한 명령을 통해서, 우리가 가야 할 바른 한 길을 가르쳐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시작한 6월 한 달도 다수가 조장하는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진리이신 주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선택을 하며, 생명과 사명의 길로 향하여 걷게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다수인 세상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잘 분별하길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