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9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내려놓을 때 받는 위로' 말씀 요약, 로마서 14:8~9,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제자로서, 오늘 새벽에 붙들고 싶은 붙들기를 원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있는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굉장히 짧은 말씀이지만, 우리 성도의 인생 전체를 붙잡아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도 주의 것이고, 우리가 죽음 앞에 서게 될 때도 주의 것입니다. 우리의 위로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소유된 주님의 제자이며 백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 우리는 항상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위해서 항상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데, 우리에게 말씀을 가장 잘 가르쳐 주는 것이 교리입니다. 우리가 신앙이 흔들리면, 간증집도 보고 많은 일들을 하지만, 정말 우리 신앙의 발전과 확고한 믿음을 위해서는 교리를 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카테키즘(Catechism)'이라고 해서, 보통 세례와 입교를 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교리 문답(敎理問答)인데,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교리 문답은 정말 은혜가 넘칩니다.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신앙고백도 참 좋은데, 그것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교리 문답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믿음이 막 새록새록 새롭게 솟아나고, 흔들렸던 부분들이 바로 잡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질문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입니다. 그 답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참된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나의 소유에 대해서 위로를 얻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반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소유가 될 때, 우리는 참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건강한 것이 나의 위로가 아니라, 주님이 강하시다는 것이 나의 위로입니다. 내가 부유한 것이 나의 위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부유하시다는 것이 나의 위로입니다. 내 계획이 잘 풀리는 것이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이 나의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고 뜻이 있으시기 때문에, 내가 계획을 완벽하게 갖고 있어서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내 것이라고 다 여기고 있습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믿음으로 한 번밖에 안 사는 인생인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밖에 사는 인생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영생을 누립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의 위로가 되어 주시기 때문에,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내가 다 결정하고 결론을 내리고 책임지고,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해야 되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역사하신다고 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위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오늘 위로를 받으려면, 다시 주님께 우리를 맡겨야 합니다. 주님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라면, 우리의 짐을 우리가 고스란히 다 져야 합니다. 내 죄의 문제도 내가 다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주님의 손에 있고, 우리의 죽음도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성도의 가장 깊은 위로는 우리가 우연히 살아가는 내가 모든 짐을 지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위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오히려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고백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다. 네 인생을 펼치고 살아가라. 네 꿈을 따라가라"라고 이렇게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안에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보면, 우리의 신앙이 내 중심이 될수록, 우리는 더 무거운 짐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라면, 내가 나를 구해내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서 내가 구해내야 하고, 다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가 정해주면 더 잘 살고, 내가 골라주면 더 잘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야 합니다. 서양 사람들의 사고는 내가 옳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사실 이런 서구적인 사고가 굉장히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자기가 틀린 것을 인정을 안 합니다. 그래서, 미국 사회는 긴장 사회입니다. 우리나라도 약간 긴장 사회입니다.
   성도는 내가 다 맞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맞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과 20절에서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님께서 핏값으로 사신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은 노예 상인이 우리를 산 것이 아니라,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를 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신 분은 사랑과 긍휼과 인자와 자비가 많으신 분입니다. 또한,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하시고 다 살아가시는 영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해도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지에 따라 우리 일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선하고 바른 사람을 위해서 일할 때, 거기에 큰 은혜와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를 소유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복음이고, 우리의 능력이며, 우리의 기쁨입니다. 
   모든 것들이 우리를 소유하거나 살려고 합니다. 두려움과 걱정과 많은 생각과 돈이 우리를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나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다"라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것도 죄의 것도 실패의 것도 두려움의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완전히 사셨습니다. 죗값으로 우리의 일부분만 사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족함도, 우리의 연약함도, 앞으로 지을 죄도 다 주님께서 피로 사셨습니다. 여기 있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죄인이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져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죄도 짓고 연약하고 넘어지지만, 그 가운데도 위로를 얻습니다. 우리는 별의별 것에 다 넘어집니다. 우리가 주의 성도로서 항상 받아야 할 위로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의 의와 완전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주님 앞에 서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의 위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핏값으로 사셨고, 나의 의는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 예배가 절대로 의가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일 뿐입니다. 우리는 의로워지기 위해서 여기 온 것이 아니라, 은혜를 붙잡기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그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사탄과 계속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싸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전쟁은 오늘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오늘도 내 마음을 파고들어오고, 섭섭하게 괴로워하게 미워하게 하고, 주님을 떠나게 하려고 하고, 교회와 우리의 관계를 흔드는 것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있는 복음은 우리는 사탄에게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군사를 가졌는지, 능력을 가졌는지, 내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사기에 일어나는 수많은 전쟁을 생각해 보면, 사사기의 전쟁이 인원이 많아서 승리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승리가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승리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합니다. 지금 싸움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승리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려움을 만나든지, 우리가 다시 한 번 고백해야 할 말은 우리는 '주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을 갖고 소망을 갖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소유로 있을 때, 주님께서 이 교회를 더욱더 굳게 세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알 때,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금도 선하게 역사하심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선하다'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은 더 깊고 넓고 멀리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선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성도 안에 있는 삶에 어떠한 하나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기뻐할 때, 그 기쁨을 하나님께서는 선을 위하여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슬퍼할 때, 그 슬픔도 하나님은 선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잘될 때도 선을 위해 사용하시고, 우리가 안 될 때도 선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거절을 받을 때도 그것을 선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상처도 주님의 손 위에 있으면, 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모든 이유를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모든 이유를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이유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것은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손 위에 놓여져 있다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것이 성도의 위로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이것이 인생의 가장 깊은 질문입니다. 지금 보기에 좋다라는 것이 영원히 좋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행복하다는 것이 영원히 행복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고비를 넘었다고 괜찮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고비가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위로는 대학의 합격이나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고백이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주님의 것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는 주님의 소유이며,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되길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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