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27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제자임을 증명하려면' 말씀 요약, 요한복음 13:34~35,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우리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부름받은 주님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바로 사랑해야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훨씬 더 강렬한 신앙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신앙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 짧은 말씀 가운데 "서로 사랑하라"를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라"라는 계명은 구약 성경에도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 가면,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구약의 기준은 내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는데, 신약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가 그렇게 사랑해야 된다는 것이 바로 새 계명입니다. 이제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같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아가페(Agape)'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명은 다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자비심이 있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용서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대한 비유의 핵심도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새 계명은 그냥 열심히 더 많이 사랑해라가 아닙니다. 우리의 모델이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사랑할 때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참 중요합니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자녀들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교회를 사랑할 때,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사랑할 때도,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사랑할 때, 세상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는 제자도의 핵심적인 가치가 다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먼저 제자들의 발을 무릎을 꿇고 수건을 두르고 씻기셨습니다.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개념을 설교하거나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이야기로 말씀하셨고,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항상 겸손하게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거나, 남의 더러운 발을 만지셨습니다. 사랑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다 그냥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다 마지막에는 가장 중요한 얘기를 합니다. 우리에게 진짜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우리는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말과 가장 중요한 것을 전하고 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였습니다. 저기 어디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모든 교회와 제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제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사랑입니다. 누군가가 거칠게 나올 때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말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가 우리가 제자임을 드러낼 수 있는 지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알아보는 기준을 딱 하나만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전쟁이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안타까운 생명들이 지금도 죽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빨리 그쳐야 됩니다. 전쟁이 진행이 되고 있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전쟁들이 멈추기를 원하는데, 항상 전쟁인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길 축복합니다.
세상에서 상처받는 사람도 많지만, 교회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프렌들리 파이어(Friendly Fire)'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을 하다 보면, 우리 총에 우리 아군이 죽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안타깝고 아픈 일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일 때가 많습니다. 더 교회가 신랄하게 비판하고, 더 교회가 끈질기게 싸우고, 더 교회가 험담을 많이 하는 이런 일들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우리가 다른 명령은 귀하게 여기면서, 사랑의 명령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선택적 순종을 참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순종을 이루길 축복합니다. 그것이 제자의 모습이고, 제자의 증명서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 바울 서신의 한 부분으로서, 사랑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냥 사랑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을 그대로 적은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고, 우리가 닮아가야 하는 모습입니다. 이 사랑 안에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는데, 겸손이나 교만하지 않는 것도, 결국 사랑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실천되어야 하는 장소가 나의 방구석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삶의 자리, 교회와 가정과 일터와 모든 곳입니다. 우리가 남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 바라는 것 없이 손을 내미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가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쌓일 때, 세상이 비로소 그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줘야 할 것은 어떤 거대한 것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변증(Apology)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증하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너무 지적으로 어떠한 개념적으로 접근하려고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말로써 하는 변증은 그렇게 쉽게 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많은 이방인들과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서로 사랑하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복음을 변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할 때 복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다가가고, 사랑으로 말하고, 사랑으로 용서하고 품어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결국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우리가 바로 교회임을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우리의 사랑을 나누고 축복해 주길 바랍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용서해 주고, 한 사람을 인내해 주고, 한 사람을 품어주고, 한 사람에게 손을 내어 준다면, 그것이 주의 복음을 변증하는 가장 힘 있는 능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하는 꼭 증명서 하나씩을 들고 다니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오늘 다시 사랑의 주님을 붙잡는 가운데, 그 사랑을 통해서 제자임을 증명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길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