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4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발치에 앉아 들으라' 말씀 요약, 누가복음 10:38~42,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오늘 마리아는 들었습니다. 예수님 발치에 앉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듣는 것과 일하는 것의 비교인 것 같지만, 또한 자리의 비교이기도 합니다. 시편 1편도 복을 말할 때 자리로 접근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편 1:1~2)"라고 적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리가 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바로 열매를 맺고 잎이 청청한 그 이야기도 함께 이어져서 시편 1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이 귀한 새벽에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을 축복합니다.
   우리는 첫 번째 관문을 잘 통과해서, 예수님 발치에 그 귀한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듣는 것에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발치에 앉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듣는 것이 쉽지 않고 정말로 어렵습니다. 우리가 다 듣고 있지만, 다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밀리 카스리엘(Emily Kasriel) 작가가 쓴 '딥 리스닝(Deep Listening, 깊은 경청)'라는 책에서, 왜 사람들이 잘 못 듣는지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연구한 내용들이 나와 있습니다. 대화를 하거나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나는 이겨야 한다'라는 사람들은 잘 못 듣는다고 합니다. 대화에서 이기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이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고 승리해야 된다거나 혹은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거나 나를 화나게 한다거나 그럴 때, 우리는 더 대화를 잘 듣지 못합니다. 감독자 역할을 하거나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도 잘 듣지 못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우리가 상대방과의 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가끔 가다가 "네? 잘 못 들었는데요. 네 뭐라고요?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몇 마디를 하면, 상대방과의 대화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너가 무엇을 알아?"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내 얘기를 반복해서 전할 뿐이고, 상대방의 얘기에는 전혀 아무런 정보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꾸 조언을 하려고 하지만, 들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사람 말하는 것이 뻔한 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다 아는 것이라서 시간이 남게 되고, 우리 안에서 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듣는다는 것이 우리 삶 속에서 사실은 잘 일어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다양한 상황과 지식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나와 안 맞는 얘기면 들리지 않고, 나보다 모르는 사람이 얘기하는 것 같으면 들리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듣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교가 나옵니다. 마리아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들은 행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좋은 편을 택했다"라고 말합니다. 듣는 것은 우리가 선택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들려야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은 적극적인 선택입니다. 우리의 귀는 열려 있지만, 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에 듣는 것입니다. 선택했다는 말은 다른 것을 할 수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듣는 것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듣는 것을 택하길 축복합니다. 여기 '발치에 앉았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이 예수님 '발 밑에 앉았다'라는 의미지만, 동시에 이 말은 '자리를 사모했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발치는 말씀을 듣는 자리이고 제자의 자리입니다. 배우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평생에 예수님 발치를 사모하길 축복합니다. 우리 평생에 정말 세상에 좋은 곳들이 참 많이 있지만, 그 예수님의 발밑 거기가 우리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풍요로워지는 자리이고, 위로받는 자리이며, 하늘의 뜻을 깨닫는 자리입니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정말 많은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 앞에서 내 생각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할 것인지 아니면 들을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로 선택했습니다. 또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과 신념과 다른 말씀이라도, 그것이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일 때, 그것을 듣기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이 시대가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도전인 시대입니다. 우리는 이미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을 지난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Post-postmodernism) 세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양성으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자기 편들끼리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시대에 진리를 선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를 진리로 듣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우리의 집중력이 짧아졌습니다. 쇼츠(Shorts)가 유행하는 이 시대에서, 어떤 핵심만 들으려고 하는 참 듣기가 참 힘든 세대입니다. 우리가 설교 시간에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교는 말하는 것이고 듣는 것입니다. 설교는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듣는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가 듣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선택의 문제가 믿음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발치를 선택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택을 잘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냥 택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택했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좋은 것을 택하는 기준입니다. 우리가 믿음 때문에 택하는 것은 복이 있습니다. 내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 사랑해서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의 기준은 명백합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더 잘 믿는 길을 택하길 바랍니다. 하나님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을 택하고, 예수님이 기뻐하실 일을 택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기준은 명백합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보면, 마르다가 훨씬 더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기준은 사람이 보기에 더 좋은 것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보시기에 더 좋은 것을 택한 것입니다. 그것은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예수님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훨씬 더 기뻐하신 것입니다.
   선택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이 대단히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마르다도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그런데, 믿음 있는 사람도 때로는 믿음 없는 곳을 택할 때가 있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둘 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중에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어도 선택을 할 때는, 더 좋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것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택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발치에 앉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앉으셨습니다. 거기가 하나님의 발치입니다. 그리고 기도하셨지만, 예수님은 결국은 들으셨습니다. 기도의 행위가 하나님께 많이 외치는 것 같지만, 결국 기도는 듣는 것으로 맞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과 생각을 듣는 것으로 맞춰집니다. 
   예수님은 많은 것을 택하지 아니하시고 좋은 것을 하나를 택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게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들을 수 있길 축복합니다.
   잘 듣는 사람이 결국 일도 잘 합니다. 꼭 들을 때 잘못 듣고 딴짓하다가 엉뚱한 것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의외로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님 발치에도 앉아야 되지만, 오늘 한번 세상에 나가서 잘 듣고 다니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듣는 자세를 통해서, "넌 좋은 것을 택하였다.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해 주시고, 우리에게 듣는 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발치를 사모하고, 그 말씀을 듣는 것을 가장 기뻐할 수 있길 소망해요~^^*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