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4 토새깨가 예배 담임 목사님 '성령과 함께하는 승리, 절제' 말씀 요약, 고린도전서 9:24~27,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우리는 힘이 있을 때,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칼로 쳐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말을 막 하고 사람들을 막 부리며, 성질나는 대로 다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고린도전서의 말씀은 승리와 절제가 얼마나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해야 된다고 오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공식에 절제가 반드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원하다면, 우리는 절제하는 법을 배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성령 충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절제'라는 말을 대부분은 좀 적게 하는 것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데, 사실 절제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적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많이 먹으면 안 좋은 것이고, 무엇이든지 적게 먹어도 안 좋은 것입니다. 내게 맞게 하는 것이 조절입니다. 그것이 승리의 방식이고, 절제의 핵심입니다. 지나치지도 않아야 하고, 부족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우리 건강한 몸은 조절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특별히, 가장 기본적인 조절 능력이 우리 신체의 온도 조절입니다. 인간의 몸은 적당한 범위를 넘어서면, 심각한 문제에 빠집니다. 뜨거운 것이 좋다고 해서 40도를 넘어가면 죽습니다. 또한, 40도를 넘어가게 계속 놔두면, 사람이 죽고 뇌가 기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시원한 것이 좋다고 해서 차게 있다 보면, 저체온증으로 역시 큰 위험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더우면 몸이 조절을 합니다. 땀을 내어서 몸을 식힙니다. 차가우면 열을 내어서 몸을 뜨겁게 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몸이 갖고 있는 조절 능력인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는 식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성도들은 세월이 지나가도 식거나 차가워지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뜨거워서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성령을 거스르거나, 교회의 질서를 어기면서 자기의 마음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에 절제의 아름다움이 있고 절제하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여러 부분에 조절을 잘해야 되는데, 언어의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의 실수로 넘어집니다. 야고보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고 진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길들일 수 있어도, 혀는 길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뛰는 동물들을 길들일 수 있어도, 사람의 세치 혀를 길들이기가 어렵다라고 말을 합니다. 또한, 우리가 말을 많이 하면 실수를 하기 때문에, 선생이 되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하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조절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절제의 가치입니다. 절제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것을 우리는 '절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본능을 거스르고 유혹을 이겨내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견뎌내고, 야유를 참아내고 환호 소리에 들뜨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를 쳐서 이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주를 하다 보면, 별의별 상황이 다 있습니다.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고, 내가 잘 뛸 때가 있고 잘 뛰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야유할 때가 있고 환호할 때가 있습니다. 박수 쳐줄 때가 있고 소리를 지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때에 조절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를 쳐서 복종하게 해서 목적을 향해서 달려갈 수 있는 주의 종들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끝까지 달려가려면, 반드시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힘을 다 써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힘이나 말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절제의 기술을 가질 줄 알 때, 우리가 목적지와 마지막 경주의 종착점에 다다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힘든 바로 그 지점에 우리는 성령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힘과 은혜를 주실 때, 우리가 나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이 절제의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러 사람들과 동행하고, 선교지에서 수많은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 함께 일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말씀이 적혀 있는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비난하고 거부하며 험담하는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오직 복음과 함께 승리하기 위해서,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했고, 그들을 섬겼고 사랑했고 절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럴 때, 고린도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그런 은혜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하여 절제하는 은혜를 누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절제의 의미라면, 또 다른 절제의 이름은 '조심'입니다. 우리가 조심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심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넘어지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꾸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다른 곳을 쳐다보기 때문에,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길을 걸어가면,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주자가 앞과 좌우를 살피지 않고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뛰어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조심하려고 하는 영적인 본능을 지켜야 합니다. 이런 조심하라고 하는 표현이 성경에 다양하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 근신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겸손하라"는 모두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이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절제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겸손하면 승리합니다.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깨어 있으면 승리합니다. 똑같은 결말입니다. 절제해서 승리하는 것과 조심해서 승리하는 것과 근신해서 승리하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그 목적이 승리하게 하는 것으로 다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일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은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해서 좋은 일이 있을 때, 조심해야 된다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일이 있을 때도,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만만한 일일 때도,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조심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조심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확신이 있으며,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제일 잘 넘어지고 실수하며, 결국은 끝까지 달려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신앙에 너무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제가 깨어서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늘 근신하게 하시고, 저로 하여금 늘 겸손하게 하여 주셔서, 제게 주신 경주를 끝까지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는 그의 저서 《스킨 인 더 게임 (Skin in the Game)》에서 '외과 의사'를 예로 들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외과 의사가 외과 의사처럼 생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탈레브는 이를 경계합니다. 사람들은 그럴싸하게 생긴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에도 조심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의지하고 신뢰하며 따르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에 능력이 있지만, 조심 자체로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조심해도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은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넘어질 수 있고, 어려움을 당할 수 있지만, 조심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세입니다.
   우리에게 '조심'이라는 말은 다시 말해서 나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눈과 판단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를 높이 여기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진정한 조심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조심하지 않게 되었을 때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울을 보면, 왕이 되고 높아지면서 하나님 앞에서 조심하는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마음대로 영을 부르고, 귀신 접하는 무당 찾아가서 귀신을 불러내고, 아직 제사장과 선지자 사무엘이 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예배를 드립니다. 조심을 잃어버린 것부터 사울의 문제가 시작이 되고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조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길 바랍니다. 
   예전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할까 했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다 위험의 사인들입니다. 절제와 조심을 잃어버린 그런 우리들에게 주는 경고의 사인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울처럼 조심함을 잃어버리면 버림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절제가 쉬우면 다 승리합니다. 공부의 반은 절제입니다. 공부의 반은 나를 쳐서 복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해도, 영적인 삶을 지키는 것도 나를 쳐서 복종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그냥 편하게만 사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와 맞지 않는 어려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를 쳐서 복종하게 하는 절제를 이루어 내야 합니다. 우리는 달려가기 힘든 곳에서 내 다리를 쳐서 복종하게 하는 일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달려가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조심하는 자세로 경주에 임한다면, 성령의 열매가 성령의 역사하심이, 우리 모두를 끝까지 달려가게 해서 승리하게 하는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절제가 마지막 성령의 열매라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 위에 절제를 더 하길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이 맛과 비슷한 개념인데, 무엇인가 하다가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소금과 같이 국을 끓였는데 먹었는데 밍밍할 때, 소금을 조금만 넣으면 그 국이 확 살아나게 됩니다.  또한, 소금 하나 때문에 국 전체가 맛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절제는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에 절제가 반드시 있어야 그 삶의 승리가 이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사모하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분명히 기억해서, 우리의 삶에 중요한 은혜의 도구로 삼길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귀한 열매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우리의 삶에도 성령의 열매가 가득 맺히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오직 성령 충만으로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가운데, 우리의 모든 경주에서 끝까지 승리하는 은혜가 있길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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