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3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온유함 속에 쉼이 있다' 말씀 요약, 마태복음 11:28~30,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오늘은 성금요일(聖金曜日, Good Friday)입니다. 고난 주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날이며, 또한 가장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십자가에 있는 고통과 거기에 있는 아름다움, 십자가에 있는 어두움과 거기에서 시작되는 밝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발견하게 되고 고난 주간에 만나는 신비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모순이 온유(溫柔)에도 숨어 있습니다. 온유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온유는 인기가 없습니다. 성경에 있는 많은 것들이 인기가 없지만, 특별히 온유함은 특별한 인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온유가 인기 있는 것이라면, 투표를 통해서 뽑히는 선출직의 사람들이 자기의 온유함을 엄청 앞세울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온유함을 가장 고귀한 것 중에 하나로 여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마음의 평안도 쉼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면 멍에를 메고 있지만, 우리는 참 쉼과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평안과 쉼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지신 것이 율법이 아니라 온유함과 겸손함입니다.
   온유는 배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온유함을 포기하는 이유가 타고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온유는 원래 배우는 것이고 그것을 다른 말로 말하자면, '성령의 열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타고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배우는 것이고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적들에게 함부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주하는 자들에게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채찍질 하는 자들에게 채찍으로 갚아주지 않으셨습니다. 침 뱉는 자들에게 침을 뱉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온유'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프라우스(Praus)’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로 사나운 동물을 온순하게 만들거나 야생마를 데려다가 조련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또 다른 용례(用例)는 거센 풍랑이 잠잠해졌을 때입니다. 우리가 풍랑을 잠재우고 답글을 쓰면 내게 쉼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라는 것은 내 안에 풍랑이 일고, 내가 날뛰는 야생마 같지만 잘 훈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날뛰던 소가 멍에를 메고 묵묵히 밭을 갈듯이, 날뛰던 우리들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면 조용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격으로 온유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서 온유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에 최고의 수혜자는 자신입니다. 우리가 온유하면 남에게 쉼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면 남들이 좋은 것이 아니라, 결국은 내가 좋은 것입니다. 이 복을 다 내가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있길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열매가 있으면, 우리가 있는 그곳도 아름다워지지만, 진짜 복은 내가 다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가 시편 37편 11절에 보면,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그 기업은 남이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그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내 안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있다면, 그 참된 성령의 능력으로 내가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유함으로 누군가를 거칠게 대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고, 쉽게 화내지 않고, 내게 있는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보다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온유하지 않고 거칠어지게 되면 당하는 사람들도 고생하지만, 결국 자기가 다 고생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면, 내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부드럽게 대하면, 복은 다 나에게 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온유한 교회 되길 원합니다. 온유해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자세가 또 하나님께서 다 때마다 주신 은혜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온유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민수기 12장 3절에서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의 멍에를 통해서 온유를 배운 것입니다. 신명기에 마지막을 보면, 모세가 죽을 때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적고 있습니다. 모세가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 충분히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그만한 체력과 모든 것을 여전히 끝까지 갖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끝까지 강건할 수 있었던 것은 다 모세의 온유함 때문입니다. 모세가 온유했기 때문에 모세는 광야에서도 쉼을 누린 것입니다. 우리가 온유해야 쉼이 있고, 거칠면 쉼이 없습니다. 모세가 멘 멍에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많은 멍에를 메었어도 온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이 삶에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쉼이 있는 삶이 강건한 삶입니다. 하나님과 성령께서 주시는 이 참된 쉼이 있는 삶이 정말로 힘 있고 능력 있고 강건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늘 온유함과 겸손함, 예수님이 주시는 그 쉼이 있길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온유하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십자가 지고 가셔서 채찍 맞으시고, 거기에 달려서도 저항 한 번 하지 않으십니다. 역정 한 번 내지 않으십니다. 그저 조용히 손과 발에 못 박히시고, 가시관 쓰시고 모든 걸 쏟아내시며, "다 이루었다"라고 하시면서 오늘 운명하시게 됩니다. 이 요동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온유함으로 살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쉼이 있는 삶, 평생에 힘을 잃지 않는 복된 삶을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유함으로 참된 힘을 얻는 삶이 되길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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