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6 새벽2부 예배 이시영 목사님(콩고 민주 공화국 루붐바시 개신교대학교 총장) '헤롯의 길, 예수님의 길' 말씀 요약, 누가복음 13:31~35,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을 이야기할 때, 붙는 여러 가지 별명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 이후에 초대 교회가 성장해 가면서 그리스도인을 이야기할 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바로 세상의 길과는 다른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걸어가셨던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과 피해야 할 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의 길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헤롯'이라고 하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과 그와는 전혀 상관없이 걸어가는 예수님의 길입니다. 눈에 드러나는 길은 같은 길이지만, 예수님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헤롯은 언제나 예수님과 대척점(對蹠點)에 있었던 이름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이름의 헤롯이 등장합니다. 모두 '헤롯'이라고 하는 가문으로 한 가족입니다. 우리가 헤롯 가문의 삶을 좀 돌아보면, 헤롯의 세상의 길이 어떠한 길인가 짐작하게 됩니다. 
   우선, 헤롯 가문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신념 혹은 사람의 의리는 쉽게 내팽개치는 인물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의 아버지였던 안티파스는 로마의 폼페이우스와 율리우스 시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기회를 따라 대세를 따르던 기회주의자였습니다.
   또한, 헤롯 대왕 역시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 사이에 권력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자기의 정치적인 견해를 뒤바꾸는 철새 정치인이었다고 역사가 기록합니다. 그래서, 역사는 그들이 왕이 되었지만, 자신의 권력을 위해 소신과 지조를 언제나 바꾸어 버리는 소인배였다고 기록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헤롯의 가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유대교로 개종하기도 하였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종교적인 규율과는 상관없이 살기도 합니다. 유대교의 규율과 상관없이 로마 세속 문화에 따라, 조카이자 동생인 동생의 아내와 결혼하는 파렴치를 수치로 느끼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도시를 세우고 그곳에 황제의 이름과 자기의 이름을 섞어서,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도시를 명명합니다. 이처럼 '헤롯'이라고 하는 이름은 자기를 드러내고 긍정하는 인생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헤롯은 사람을 죽이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헤롯 가문은 자기를 위해서라면 사람의 생명을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유대인의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헤롯 대왕은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에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 아이를 죽였습니다.
   또한, 자기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죽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예수님의 죽음에 거리낌 없이 일조합니다. 그는 유대의 왕이었지만, 유대인을 살리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헤롯의 길은 사람을 죽이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의 길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길과 참 비슷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신념도 믿음도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바꿔버리는 기회주의의 길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기 긍정의 길, 타인의 생명을 발판 삼아서 자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길, 이 헤롯의 길은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길에 쉽게 유혹당합니다. 우리가 지금 사순절에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면, 내가 그 길을 잘 걷고 있는지 잠시 멈춰서 내가 걸어온 그 발자취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길의 발자취가 헤롯의 길은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우리를 추스려서 예수님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이 사순절에 우리가 다시 돌아보며 따라가야 할 예수님의 길이 3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목적을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헤롯이 기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길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따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32절 말씀에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이 도사리는 고단한 예루살렘 여정이었지만, 오늘과 내일은 '내가 분명 나의 길을 걷겠다'라고 하셨던 이유는 바로 이 삼일에 '완전하여지리라'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자기의 이익을 따라 신념을 바꾸는 기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다면, 예수님은 스스로의 편함과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우직한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길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 완전해지는 하나님의 뜻으로,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완성을 향한 분명한 목적이 있는 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인생과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나의 오늘의 결정과 발걸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를 우리는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헤롯의 길이 자기 긍정의 길이었다면, 예수님의 길은 자기 부정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놓는 길을 걸어가십니다. 자기를 나타내고 드러내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서슴지 않았던 헤롯과 달리, 예수님은 자기를 포기하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 말씀처럼, 예수님의 길은 스스로 낮추시는 비움의 길이었습니다. 스스로 완전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포기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조차 대단하신데,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인간이 당하는 가장 치욕적인 죽음의 형벌이라고 하는 그 십자가에 몸과 살이 찢기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십니다. 자기만을 드러내는 자기의 긍정의 길을 살아가는 오늘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나를 비우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헤롯의 길이 사람을 죽이는 길이었다면, 예수님의 길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자기의 생일을 맞아 유대의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모아 자기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화려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이 화려한 연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연회의 축배 뒤에는 고역(苦役)과 세금의 신음 소리와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의 눈물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잔치는 하나님의 공의(公義) 따위는 찾을 수 없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술수(術數)와 음모(陰謀)만 가득합니다. 그 결과, 자기의 체면을 위해 세례 요한을 처형했습니다. 헤롯의 잔치는 사람을 죽이는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뒤에 뒤따르는 잔치는 전혀 다른 잔치가 나옵니다. 화려한 궁정이 아니라 그냥 허허벌판에 수많은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아닙니다.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 바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사건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이 먹었던 놀라운 식탁의 기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시작된 보잘것없는 식탁입니다. 누가 비교해 봐도 헤롯의 식탁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들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과 시작된 보잘것없는 식탁이었지만, 여기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사랑에서부터 시작된 이 광야의 식탁이 기적이 됩니다. 절망 속에서 죽어가던 이들에게 생명의 씨앗이 마음 가운데 움트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헤롯의 식탁과는 정반대로 예수님의 식탁에는 생명과 하나님 나라가 자라납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렇게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헤롯의 길과 예수님의 길, 이 두 갈래의 길은 우리 인생 앞에 놓여져 있는 선택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2026년 사순절을 살아가면서, 이 귀한 절기에 예수님이 걸어가셨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 자기를 낮추고 이웃과 세상을 섬기며 자기를 부정하는 길,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쓰러진 이웃을 일으켜주고, 상처받은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생명을 살리는 길에 동참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가 나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가운데, 내 옆에 있는 이웃들의 생명을 살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길로 함께 걸어가길 소망해요~^^*

<참고 영상>
* [2025.06.08 명성교회 주일찬양예배] 부활을 살다┃이시영 목사(루붐바시 개신교 대학교 총장)
https://www.youtube.com/watch?v=-o1MnjUNz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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