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8 토새깨가 아르헨티나 이재삼 선교사님 '예수님의 흔적이 삶에 있어요' 말씀 요약, 갈라디아서 6:17~18, 작성자: 이용석 집사>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종류의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온 인생길에 자신이 살아온 대로의 흔적이 그 인생의 길에 남겨지고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난 상처와 마음에 새겨진 상처의 흔적들이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도 하지만, 그 흔적들이 우리로 하여금 바른 삶의 자리로 방향을 잃지 않고 바로 가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선언합니다. 단순히, 내가 예수의 흔적을 내 몸에 가졌으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복음을 전한 갈라디아 교회 안에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혼란케 하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을 통해 처음으로 구원의 복음을 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사람들이 그 공동체 가운데, 특별히 유대주의자들이 그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과거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런 전통과 어떤 관례들을 이야기하면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할례를 이야기한 것인데, 복음의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거기에 첨가시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 안에 있던 이방인들이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소식을 접한 사도 바울이 격하게 분노하면서 기록한 서신이 바로 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구원과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다시 그들을 향해서 정리해 주고 지도하는 그런 서신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예수의 흔적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좀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려고 합니다.
먼저는, 사도 바울이 말한 예수님의 흔적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이 되시고, 나는 그분의 종'이라는 그런 고백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흔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이 말은 소유를 표시하는 '낙인'과 같은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흔적'인 '스티그마'의 개념을 사용해서, 갈라디아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할례주의자들과 복음을 떠나서 할례의 유혹을 받아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고, 그 흔적은 바로 너희가 그리스도의 소유이며, 예수가 주인이시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자리와 현장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을 매 순간 드러내는 삶을 사는데, 그것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떤 문제 앞에서든지 '나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분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고백이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이 말한 예수님의 흔적은 예수님을 위해 살았던 삶의 흔적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 되심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흔적으로 낙인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과거에 알고 있던 그 모든 것을 분토와 배설물 같이 여겼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의 그의 삶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당한 많은 핍박과 고난, 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를 맞기도 했고, 태장을 맞고 또 돌에 맞기도 하고, 여러 가지 죽음의 위협 속에 잊게 되었던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몸에 새겨진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흔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데, 그 흔적들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누구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흔적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만 높여지기를, 예수님의 이름만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과 이 시대는 바울 때와는 다름이 분명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매맞음과 돌에 맞음이 우리 가운데는 없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교의 현장들 속에는 여전히 그런 일들이 있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산 흔적들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거나 주님 뜻에 따르려다 보면,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아픔의 경험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선포하기를 머뭇거리는 때가 우리들 가운데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하는 그 선언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과 그 분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 많은 시간과 재물과 가족까지도 희생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교를 하다가 많은 오해를 받기도 하고, 동역하는 선교사들과의 갈등 관계에 이르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그것들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들인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점검 속에서 다시 한 번 삶의 일들을 감당해 가야 합니다. 그 일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내 스스로 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와 함께해야 하고, 그것이 결국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와 있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흔적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말한 예수님의 흔적은 우리들의 삶에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자로 삶의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생명이 흘러가고, 그들이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정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실 일들을 온전히 이루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맞죠?'라고 얘기했을 때, 그것은 분명히 우리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보니 정말 예수님의 사람이 맞으며, 우리의 모습 속에 예수님이 보이고 느껴진다는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곳을 가든지 정말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느껴지는 그런 복된 인생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CCM 찬양 중에 '아름다운 마침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내 삶의 마침표 주 예수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그 자리엔 삶의 흔적들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삶을 살아갈 때, 그 자리에 삶의 흔적들이 분명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훗날 삶의 흔적들을 남기고 떠나게 될 것인데, 그 때에 정말 주님께서 우리에게 '수고했다고 내 사랑하는 자요'라는 그런 주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흔적이 우리의 삶의 풍성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묵상 기도제목>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지고 삶의 자리에 복음을 선포할 때, 이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놀라운 은혜가 있길 소망해요~^^*
<오늘의 묵상 찬양>
* 아름다운 마침표 @시와 그림 6집 『반석의 길』
https://www.youtube.com/watch?v=_uAhJon6a3w&list=RD_uAhJon6a3w&start_radi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