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9 새벽2부 예배 신동신 목사님 '낮아질 때 받는 축복' 말씀 요약, 요한복음 21:15~18, 작성자: 이용석 집사>
우리가 요즘에 다들 핸드폰이 있기 때문에, 사진을 정말 많이 찍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까이 얼굴을 찍을 때는 꼭 각도를 얼짱 각도로 찍어야 얼굴이 잘 나옵니다. 반대로, 조금 멀어지면 앵글을 조금 낮추어야 우리의 몸도 길어 보이고 뒤에 풍경도 잘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가까이 다가오려면, 우리는 점점 앵글이 올라갑니다. 우리의 얼굴과 뇌가 중요해지기 시작하면, 우리의 삶의 앵글이 점점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얼굴과 눈이 중요한 그런 얼짱 각도가 아니라, 오히려 좀 더 거리를 두고 우리의 시선을 더 낮추어서 그 뒤에 보이는 하늘을 볼 때, 그것이 더 아름다운 사진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눈이 점점 아래에서 하늘을 향하여 산을 향하여 눈을 뜰 때, 우리에게는 더 큰 은혜가 찾아오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눈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귀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오히려 낮아질 때에 높아지는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파도와 같습니다. 내려가면 올라가게 되고 올라가면 내려오게 됩니다. 우리가 많이 받으면 많이 나누어야 하고, 많이 나누다 보면 도리어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르고 받으면 나눌 줄 모르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고 불편해하고 높아지는 것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가 파도를 볼 때 '파도가 높다'라고 하지 '파도가 낮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높아지는 파도만 보면 겁이 나고 힘들며, 길이 안 보이고 소망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파도는 곧 내려갈 것을 믿고 기다리면, 우리에게 더 좋은 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더 겸손한 모습으로 잘 지내느냐가 우리의 삶의 모습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힘과 길을 열어주시고 돕는 사람을 보내주셔서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잘 이겨내고 견뎌내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살피듯이 높아 보이는 그 높은 파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다 낮아지고, 낮아진 그 만큼 또 우리는 다시 높아질 것을 바라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그 시절이 그의 인생에서 아주 높았던 시간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며 도망쳤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가장 낮아진 베드로의 삶 속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옛날처럼 베드로가 어부의 역할로 돌아갔지만, 죄책감과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하였을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다시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며 그를 가장 높이 올려주셨습니다. 세 번을 부인하며 무너졌던 베드로를 세 번 사랑을 고백하면서 가장 높고 귀한 관계를 회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낮아졌을 때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낮아져 있을 때, 더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사랑한다 말씀하시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겨나갈 힘과 능력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은 잘 아셔서 큰 은혜와 능력으로 함께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낮아지고 힘들고 아플 때일수록, 더 우리 옆에서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높이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아진 우리를 더 높이시기를 원하지만, 그것을 막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만이고 폭력이며 세상에 매어 사는 게으른 삶입니다. 자기는 일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이 도와주지 않거나 '하나님이 능력을 주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잘 안 되고 힘들고 낮아진다'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입니다.
벌새는 모든 새들 중에 가장 뛰어난 비행 실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빨리 갔다가 공중에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뒤로도 갈 수 있습니다. 온갖 비행 기술을 가진 뛰어난 새가 바로 벌새입니다. 벌새가 아름답게 빠른 날개짓으로 분당 3천 회라는 엄청난 속도를 이겨내기 위해서 심장이 1분에 600번 뛰게 됩니다. 벌새가 더 빠르게 날 때는 최대 1분에 심장이 천 번을 뛴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온몸이 빠른 신진대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날고 있지 않을 때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됩니다. 심지어, 벌새는 잠자는 동안에도 굶어 죽을 수 있습니다.
벌새가 잠을 잘 때에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거의 가사 상태에 이르러야 됩니다.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모든 것을 멈추고 가만히 죽은 듯이 살아야만 벌새는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벌새가 날아가는 것과 먹는 것과 자는 것과 삶 자체가 기적적이지만, 그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벌새는 아주 열심히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삶이 기적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늘 찾아와서 우리를 도와주고 기도하는 것이 다 응답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만큼 열심히 살아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으로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감당해내고, 그것을 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살아가거나, 영적 가사 상태에 빠져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난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뜨거운 심장으로 1분에 3천 번이나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벌새의 그 날개짓처럼, 우리의 기도와 예배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을 살아가게 하고 낮은 채로의 삶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면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위에 서지 말고 낮아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겸손해지고 열심히 일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에게는 그 고난이 끝이 아니라, 그 고난은 귀한 출발이고 시작이 되어서 다시 하나님 곁으로 높은 곳으로 복된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높은 천국을 보게 되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올수록,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질수록, 우리가 낮은 곳으로 갈수록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을 허락하시고 우리가 여전히 패배자로 낮은 곳에 있는 자로 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베드로의 삶에 찾아가신 것처럼,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난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베드로의 삶이 다 변화하고 승리의 삶으로 변화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변화하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인생의 역전이 찾아옵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연결이 이루어지고 가장 낮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면,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넘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사업에서 잘 해보려고 물질적인 문제를 이겨내 보려고 기도하면서 나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기도 앞에 나의 겸손과 하나님과의 사랑으로 매일 아침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향하여서 그 말씀을 의지하는 모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낮은 우리를 더 높이시는 복된 길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보여주신 복된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승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길이 아니라, 가장 마지막에 보여주셨던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법적으로도 죄인의 모습이었고, 그 무거운 십자가를 들고 높은 골고다의 길을 올라가셨습니다. 그 길을 올라가서 그 십자가의 온몸에 못을 박히며 달리셨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결국에는 이 땅의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가장 낮은 곳에 임하여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은 누가 봐도 패배자의 모습이었고 죄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찾아오셨고, 그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과 낮아질수록 승리하는 길을 열어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의 길들을 잘 따라가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