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7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예수님의 식탁에서 누리는 은혜' 말씀 요약, 요한복음 6:10~13, 작성자: 이용석 집사>
예수님께서는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오늘 식사는 평소에 제자들과 갖는 소규모의 식사는 아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식사마저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것을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공격하는 도구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누가 먹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냥 단순한 관찰로 이루어지는 결론이 아니라, 어떤 누군가를 비난하고자 하는 인격을 훼손하고자 하는 그러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먹는 자리를 중요하게 여기시고 마다하지 않으신 이유는, 바로 먹는 것이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식사만큼 가족의 문화가 농축되어 있는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의 삶과 가정에 많은 자리들이 있지만, 가장 많이 가정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나누어지며 강화되는 곳이 식탁의 자리입니다. 식사에는 음식이라는 문화도 녹아 있습니다.
우리의 식사의 자리에는 다양한 문화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사회가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은 정말로 대규모의 식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우리는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가지신 식사의 문화,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고 나누고 싶어 하시는 신앙의 모습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못 먹는 사람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식사의 자리에 빠짐없이 참여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다 먹는데 나만 못 먹는 것처럼 서러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서러움을 만드는 사역이 아니라, 서러움을 풀어주는 사역입니다. 우리 모두를 다 먹게 하시는 것과 식탁의 자리에 다 초대받는 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예수님의 식사의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높거나 잘나거나 좀 더 남들보다 의인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우리는 다 주님께 초대받고 그 식사의 자리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 모두를 다 먹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은혜이고 식사의 자리의 문화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먹는 것이 진짜 은혜입니다. 교회는 모두가 나와서 은혜를 받는 곳으로 여기에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기독교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진짜 차별이 많습니다. 또한, 공산주의 역시도 결국에는 가장 권력이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에 차별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식사의 자리에는 그런 차별이 없습니다. 지금 이 5천 명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습니다. 여기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있고,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도 있고, 힘 있는 사람과 힘 없는 사람이 다 모여 있지만, 주님 앞에만 나오면 다 같이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주님을 양식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 앉아도 주님의 양식을 먹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다 함께 와서 주님의 은혜를 먹고 그의 식탁에 나아가면, 차별함이 없이 우리를 먹이신 주님의 은혜를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이 음식을 축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감사를 드리셨다'라는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기 전에, 음식에 감사를 표현하고 드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우리의 식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것이 감사입니다.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이 식사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들고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아주 영적인 일이 바로 이 감사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밥을 먹을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 우리는 그 식탁의 자리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감사와 하나님을 기억함 없이 식사한다면, 그것은 내 자랑, 내 능력, 내가 낸 돈, 내 잔치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면 연결이 되는 것이고, 기도가 없으면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감사하느냐에 따라 그 관계가 이어지고 형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사할 때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먹으면 그 음식이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식탁의 자리가 우리들의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은혜의 자리, 하나님의 능력의 자리, 하나님이 주신 행복의 자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는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모든 음식을 버리는 것 없이 모으셨다는 점을 기억해 보기를 원합니다. 음식 쓰레기 분리를 이 세상에 가장 먼저 하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리 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12개 바구니에 찼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먹고 남은 것 중에 생선은 없었고 보리떡만 모은 것이 12개 바구니입니다. 보통, 유대인들에게 3이나 7 이런 숫자가 갖고 있는 완전의 의미가 12에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눠주신 음식이 '풍성했다 완전했다 부족함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식사의 자리는 완전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먹을 때, 우리는 부족함 없이 만족함을 누립니다. 5천 명의 남자와 더 많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다 먹고 남은 것이 12개의 바구니밖에 안 될 정도로 그 음식이 거의 완벽하게 소비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먹고 깨끗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식사의 자리는 우리를 배부르게 하지만, 낭비하고 허례허식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식사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는 완벽한 식사입니다.
우리가 누구와 함께하느냐 누가 주시는 음식이냐 이런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때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더 맛있는 화려한 식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의 식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은혜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그런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이 새벽에 소박한 보리떡과 생선이 우리를 배부르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함께하심, 예배의 은혜가 화려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여기에서 주시는 은혜가 우리를 넉넉하게 먹이고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분명히 확보해야 합니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것이 가족에게 정말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습니다. 가족들과 식사하는 시간을 좀 늘려가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그것이 가족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확보를 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 주님이 부르신 그 식사의 자리에서 풍성하고 온전하며 우리를 배부르고 기쁘게 하는 그 귀한 자리에서 함께 나누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