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6 새벽2부 예배 박현규 목사님 말씀 요약, 히브리서 11:23~27, 작성자: 이용석 집사>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의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아주 다양한 선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가볍게 하나를 선택할 것도 있고, 둘 다 다 선택해도 상관이 없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목숨이 걸린 선택이라면, 굉장히 심각하고 떨려서 극도의 긴장 속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서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 앞에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두셨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개개인의 자유이자 몫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할 수 있는 길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세계관이 숭배하는 여러 우상들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택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의 부모와 모세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른 기준으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믿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됐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을 받아 애굽으로 이주했던 야곱의 가족 70명은 세월이 흐르면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던 파라오도 죽자, 애굽 사람들은 급격히 늘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새 파라오는 그들을 국고성으로 건축하는 노예로 삼아버립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수는 계속 늘어갑니다. 그래서, 새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꼭꼭 숨겨놓은 이스라엘 남자 아기들을 찾아내서 나일강에 던져 죽인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가운데 모세가 태어납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시골 아이 같지 않고 도시 아이와 같은 귀티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더 영적으로 해석하면, 모세의 부모가 모세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았다는 것은 모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도성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태어난 모세를 통해 건설하실 하나님의 도성과 나라를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생명을 갖고 태어나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은 기대와 비전을 품고 바라보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도성을 건설하시려는 청사진을 다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부모 된 우리가 자녀들 속에서 이러한 아름다운 비전을 발견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때의 우리는 내 욕심으로 자녀들을 이끌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그들을 온전히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자신의 소유라 생각하고 자신의 욕심대로 자녀 속에 자신의 도시와 왕국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자녀를 통해 하나님께서 건설하시려는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그 욕심에 자녀도 깔리고 결국 부모 자신도 깔리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의 가정은 주는 기쁨을 아는 가정, 나누는 문화가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는 내가 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내가 다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가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내가 억지로 하려고 했을 때, 오히려 더 얽혀버리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너무나 손쉽게 풀어버리시는 것을 경험하면, 우리는 그때 나의 조급함과 어리석음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국에서 친어머니에게는 신앙과 자기 정체성에 관한 양육을 받았고, 왕자로서는 세상에서 필요한 여러 학문들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모세에게는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선택이 남아 있었습니다. 애굽의 왕자로 남아 왕위 계승을 노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결국에,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였는데, 모세의 거절은단순한 거절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바로 딸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차기 파라오가 될 수 있는 서열에 모세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세가 애굽 왕자의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단지 보화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즉시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은 노예의 신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계획은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셔서 광야를 통과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게 하시는 것인데, 그 과정 자체가 고난이라는 것은 안 봐도 훤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새겨주셨던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에 대한 아름다운 비전을 좋아했고 더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당당하게 그 고난의 길을 선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런 모세에 대하여 신명기 34장 10절로 12절에서, 전후로 하여 찾아볼 수 없던 선지자, 하나님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 모든 이적과 기사와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신 자 이것이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런데, 만일 모세가 애굽에서 누리던 죄악의 낙과 모든 부활을 더 좋아하여 애굽에 남아 결국 파라오가 되었다고 한다면, 태양의 신을 비롯한 각종 애굽의 헛된 우상들을 숭배하며 자기 도성을 만들다가 죽어 부활과 영생을 염원하며 큰 무덤인 피라미드에 묻힐지 모르지만, 결국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모나 우리가 낳은 자녀들이나 우리 모두가 인생을 살다 죽으면, 우리는 반드시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어 이 땅에 보내실 때, 함께 심어 보내셨던 하나님의 도성에 대한 그 아름다운 비전대로 살았는지 아니면 나의 욕심을 채우며 나의 도성을 이루려 살았는지로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까를 자기 선택의 기준으로 삼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와 내 자녀를 최종적으로 평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매 순간의 선택마다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욕심은 덜 밟아서 죽지 않았기 때문에 자꾸 꿈틀대는 것입니다. 그 욕심 때문에 애굽을 떠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비전과 거절해야 할 것을 단호히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결코 세상에서 높고 명예로운 지위에 오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지위나 자리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나와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영광을 받으시고 어떤 계획을 이루려 하시는지 그 하나님의 비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은 우리가 하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그 마음을 두는가 아니면 세상 욕심에 마음이 쏠리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의 모든 선택이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비전을 위해 믿음으로 거절하며 포기한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크고 좋은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바르게 선택하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선택하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도성을 건설하시는 데 존귀하게 사용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담대히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을 세워가는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