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08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마지막에도 구원' 말씀 요약, 누가복음 23:39~43, 작성자: 이용석 집사>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마지막까지도 그 구원의 사역에 충실하시고, 우리가 마지막까지도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정말로 귀한 말씀입니다.
골고다 언덕에는 3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실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것이 아주 특별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이라는 것이 특별하게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만 당하게 하신 사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이런 평범한 처형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셨고, 이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죄사함을 얻는 위대한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처형 당하실 때 혼자 처형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잡범들로 나쁜 사람들인 강도 2명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마지막 순간에도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한 명은 구원을 받았고 다른 한 명은 받지 못했습니다.
먼저 정말 중요한 것은 둘 다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두 사람이 지금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 이 두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우리가 겸손하고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구원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구원의 문제는 기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몰랐느냐 교회가 없느냐 그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아가면서 교회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교회가 보여도 그 한 걸음을 떼어서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함을 얻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정말 진짜 문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구원을 향한 세 가지 시선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왜곡된 시선으로 교회를 바라봅니다. 물론, 우리도 그런 사회적인 시선이 생기는 데 한몫을 안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좋은 교회의 모습이 아무리 있어도 구원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좋은 것은 절대로 안 봅니다. 교회가 무엇을 잘했다는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잘하는지는 보고 싶어 하지 않고 잘못하는 것만 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절대로 교회를 향해서 마음의 문이 열릴 수가 없습니다.
비방이라는 것은 군중 심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혼자서 창조적으로 비방을 잘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우리가 무엇인가를 비방한다면,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다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비방은 전염성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줄 아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언론에서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함께 비방하고 부모님과 친구들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말하니까 함께 비방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심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어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언론들이 다 교회를 비난해도, 우리는 교회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비방에 휩쓸리면 우리는 이 십자가에서 구원함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함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가 비방하거나 불평하지만 않아도, 우리의 삶에서 구원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불평하고 비방한다고 해서 우리도 함께 비방하고 불평하면, 우리가 구원함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십자가의 자리에서 이 행악자 한 명은 예수님을 비방했고, 다른 한 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봤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과 멸망을 나누는 길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남들 따라가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그리스도를 봐야 합니다. 우리가 사순절의 시간에 예수님을 많이 바라보길 축복합니다. 이 어려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더 주님을 분명하게 나의 구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나의 죄인 됨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우리가 구원함을 얻으려면, 내가 죄인임과 연약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함을 얻는 것에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고백하는 것에는 '내 힘으로는 구원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연약합니다' 이 말은 철저하게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회개는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나의 힘과 능력으로 나의 삶을 구원할 수 없다라는 선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철저하게 내가 죄인임을 볼 수 있는 시선을 꼭 갖기를 소망합니다. 사순절의 기간에는 반드시 내가 죄인 됨을 항상 고백하는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짧은 시간에 몇 마디 나눌 수 없는 대화 속에서, 이 행악자에게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도 안 나오고 고통과 부끄러움과 괴로움과 모든 것이 요동치는 이곳에서 이 강도는 자신의 죄인 됨을 볼 수 있는 시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시선입니다. 나를 잘 바라보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내 안에 있는 죄성과 부족함과 연약함을 볼 수 있어야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에게 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행악자의 이 땅의 삶은 완전히 실패였습니다. 강도질하다가 어쩌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르겠고 정말 비참한 인생이 되어서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고 부끄럽고 괴로운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 사람이 바라본 것은 저 천국이었습니다. 그 천국이 이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준 것입니다. 여기 있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천국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병과 고난과 아픔 중에 있고 괴로움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항상 예수님 옆에서 낙원과 주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통해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와 같은 나를 바라보고 또 동시에 천국을 바라보며 내가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할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는 절망의 자리이고 부끄러움의 자리이며 모든 것이 끝난 자리이지만,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다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너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말씀을 품고 가서, 이 사순절에 더욱더 주님을 많이 바라보고 내 안에 죄를 바라보며 천국을 바라보는 은혜 누리길 축복합니다.